의인이 더 많이 필요한 세상
우리의 삶 안에서 예전보다는 못하다고 하지만 언론의 영향력은 여전히 대단하다. 그 편성이나 공정성의 방향에 따라서 사회적 물의가 되기도 하고 가슴 속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기도 한다. 기억나는 방송 중에 하나로 미담의 주인공을 찾아가서 사연을 사회에 알리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편집을 하는 것이니, 미리 제작진과 출연진이 협의를 한다는 등의 시비가 있기도 했지만 내 기억으로는 나름 괜찮은 방송이었던걸로 기억된다.
지금도 기억이나는 이야기는 중소 도시 시장에서 자그마한 식당을 하는 부인이 노점상 할머니들이 팔다 남은 채소를 바구니에 담아 가져오면 두말 않고 사 주는 일을 몇 년 동안 하고 계셨다. 그 날도 방송국 제작팀의 일원이 남은 채소를 갖고 가니 주저없이 사주었다. 그리고 확인을 해보니 뒤꼍 자그마한 공간에 사 놓은 채소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 내막을 물어보니 노점상을 하시는 할머니보다는 자신의 형편이 괜찮다고 생각하여 사주는 것이고, 식당에서 식자재로 사용하다가 남으면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다고 담담하게 말하던 것이 생각이 났다.
성경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대해서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대화를 보면(창세기 18,20 참조)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원성이 너무나 크고,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 이제 내가 내려가서 저들 모두가 저지른 짓이 나에게 들려온 그 원성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아야겠다” 하시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불로 쓸어버리려고 마음을 먹으셨을 때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읍소를 한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하고 여쭈어 보니 주님께서는 쉰 명만 있으면 그 도시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하느님의 흥정은 계속되고 결국 10명으로 결론을 내리지만 이 숫자의 의인이 소돔과 고모라에 존재하지 않아서 결국은 멸망의 벌을 받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를 적용해보면 과연 멸망의 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를 고민해본다. 정치계, 경제계, 법조계, 의료계, 교육계, 공무원, 종교인등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 중에 존경받을 수 있는 지도자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런저런 사건들이 수없이 발생되고 보도되면서 우리들의 불신과 실망은 커지고 그에 비례해서 우리들의 실망감과 조소하는 태도는 더욱더 커져가고만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눈에 크게 띄지 않은 의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의 사회는 아직도 충분히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의인들을 칭찬하고 인정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내 비록 드러낼 정도의 의인은 아니더라도 살아가면서 지속적으로 남들에게 자그마한 선의를 베풀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이 사회는 좀 더 밝아지고 살아갈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