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知彼知己) 와 영적인 삶
사업이나 여러 가지 일을 도모할 때 상대방을 알면 성공하는 확률이 높아진다. 상대방을 알기 위해서는 매 순간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전체를 보는 눈도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불변의 모습으로 있지 않고 끊임없이 미세한 변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데 중요한 변수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미세한 움직임들이 서로 어우러지고 부딪치는 가운데 발생되고 있는 상황들이다. 우리의 온갖 갈등들을 비롯해 많은 문제들이 여기서 발생하고, 여기서 풀려나간다. 각자의 몸과 마음의 상태나 조건 등에 변화가 있는가 하면 여러 변수들로 전체적인 상황도 수시로 변화되기에 제대로 상생하는 관계를 만들어내려면 전체 상황 또한 제대로 깊이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체의 생명력이란 바로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다만 인간관계에서 변수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상생을 강조했을 뿐 상생 못지않게 상극 역시 중요하다. 상생의 기운을 제대로 알려면 적절한 상극의 움직임도 있어야 한다. 따라서 살아가며 겪게 되는 마음고생이나 긴장과 갈등, 투쟁에 대해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이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당연히 있어야 할 필요한 것들이다. 단지 도를 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요즘 자주 접하는 뉴스 가운데 하나가 자살에 관한 것이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가장부터 고독을 이기지 못한 노인이나 학교 폭력이나 성적문제로 고민하는 청소년 등 정말로 다양한 계층이 자살을 선택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원인이 무엇일까? 수많은 이유가 있을 테지만 사제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우리 모두가 영적 차원에 머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간을 경쟁의 구도 속에서 몰아넣고 있다. 서로 연결된 따뜻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관계가 아니라 다투고 경쟁하는 관계로 국가나 사회가 앞장서서 부축이다 보니 삶이 갈수록 외롭고 힘들어지는 것이다. 이는 인생에서 실패하고 좌절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인간 각자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 어떻게 영적인 차원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를 고민하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인간들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는 한 생명, 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그 바탕 위에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야한다. 포도나무의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서 하나를 이루어 존재와 생명을 일궈나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공동체도 서로가 다른 모습과 속성을 갖고 있지만 전체로서 하나를 이루며 조화와 생명을 존중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느님의 뜻대로 산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