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성모성월을 시작하면서 순교자를 생각하다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5-02 00:00 조회수 : 0

성모성월을 시작하면서 순교자를 생각하다


성모성월의 시작인 오늘 갑자기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이 생각나서 묵상하는 시간을 갖었다. 신학생 시절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에도 수사쿠의 소설 『침묵』인데, 17세기에 일본에서 가톨릭 신자들을 삶과 죽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도 눈을 감고 있으면 나가사키의 순교지를 순례하면서 느꼈던 감동이 생각이 난다. 


예수님은 유대교 종교 지도자, 로마 제국, 헤로데 왕 등 3대 세력의 야합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셨다. 처형의 핵심은 자신들의 지배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과 조선에서의 박해도 같은 성격이었다.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기에 천주교의 평등과 박애사상을 불온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2만여 명을 치명 순교자로 만들었다. 한국의 치명 순교자들과 일본 열도에서 죽어간 순교자들의 믿음을 묵상하면 『침묵』에 등장한 순교자, 배교자들의 아픈 삶과 믿음이 마음 깊이 밀려왔다.


살고 싶은 마음은 모든 생물이 갖고 있는 본능이다. 그렇다면 본능과 반대인 순교를 불사하는 믿음은 어떻게 가능했을가? “믿는냐? 아니냐?” 이 말 한마디가 생사를 가르는 순간에 거짓말을 안해서 죽임당했던 사람들, 배교의 징표로 십자가를 밟게 하는 ‘후미에’를 강요당했을 때 살기 위해서 십자가를 밟았던 날 밤에 울면서 자기 발을 씻은 물을 마시곤 했던 당대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들은 대체 무엇을 바라는 사람이었던가?


순교자들도 목숨과 자식 사랑에는 여느 인간과 전혀 다를 바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숭고한 믿음이 있었다. 빈곤과 불의한 사회 현실과 인간 세계의 유한성을 넘는 영원하고 완전한 세상인 ‘하늘나라’를 발견한 것이다. 순교자들은 영원한 생명은 이승의 짧은 목숨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하다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순교자들은 나를 세상에 존재케 한 부모, 그리고 태어난 목숨을 양육하여 오늘에 이르니, 부모와 사회에 대한 도리는 믿음의 기초가 되었다. 부모에 대한 효성으로 이웃을 공경하며 세상에 대해 보은하고 그 신의와 의리를 모든 대상과 어긋나지 않게 하는 것을 효제충신(孝弟忠信)이라 하여 유교의 최고 생활 윤리였지만 순교자들은 그 위에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둔 사람들이었다. 그들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죽음을 넘어서 부활의 삶을 영원히 사는 것이기에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