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막걸리 통을 채운 맹물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2-16 21:13 조회수 : 63

막걸리 통을 채운 맹물


어떤 마을에서 축제를 열기로 하고, 축제 기간 동안 마실 막걸리를 준비하기로 했다. 축제가 벌어질 광장 한 구석에 커다란 막걸리통을 준비해놓고 축제 전날까지 한 가정에 한 말씩의 양을 정해놓고 자발적으로 막걸리를 통에 붓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의 적극적인 호응에 힘입어 통에는 막걸리가 가득 차게 되었다. 마침내 축제가 시작되고, 축제에 참석한 마을 사람들은 막걸리통에서 막걸리를 따라 축배를 올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막걸리통에서 나온 것은 막걸리는 맹물이 잔뜩 섞인 맛없었다. 어찌된 일일까? 답은 뻔했다.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은 나 하나쯤 물을 섞으면 어떠랴 하는 마음으로 막걸리통에 맹물을 섞은 막걸리를 부었기 때문이었다.


성당에서 주임신부로 근무를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에는 척척 마음이 너그럽다가도 막상 자기의 이익이 걸린 문제를 만나면 갑자기 마음이 옹색해지고 이런 저런 변명을 통해서 자신은 공동체 의식에서 빠져나가려고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성당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남의 일에는 둔감하고 자신의 이익에는 민감해지는 모습을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것을 가장 합리화하는 결정적인 것은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마음이다. 사회가 발전할려면 이러한 마음을 갖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일이고 그래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하는데 여간 해서는 바꾸기 힘든 것도 현실이다. 


몇 년동안 우리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된 부동산이나 복지가 큰 문제라고 주장하다가도 세금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국가가 방향을 제시하면, 자신에게 책임을 묻거나 세금을 더 내는 것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만약 그렇게 결정이 나면 그것은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공산주의를 운운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한 푼이라도 덜내거나 안내면서 자신은 그 혜택을 온전히 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과연 성숙한 사회 구성원의 모습인지 묻고 싶다. 남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은 그 수익을 온전히 누리고 싶어하는 모습 속에서 하느님의 정의를 찾을 수 있을까?


우스게 소리로 정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 증세라고 할 정도이니 정말이지 ‘Noblesse oblige’가 우리 사회에서는 정착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회의감마저 든다. 진정으로 살기 좋은 사회는 자신의 책임을 누가보든 보지않든 상관없이 철저하게 실행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면 막걸리통을 채우게 되는 것은 맹물이 섞인 막걸리가 될 것이다. 혹시 우리 사회가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자신의 의무는 행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는 맹물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