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와 들쥐
오늘 이야기는 우리가 한 번쯤 들어왔을 만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려고 한다.
파랑새 한 마리가 숲에서 여름 내내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마치도 오늘만 살 것처럼 겨울에 대한 걱정도 없이 오직 노래만 불러서 산속의 동물들의 삶을 즐겁게 했다. 한편 숲 한구석에는 부지런한 들쥐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날마다 온갖 곡식들을 물어다가 곳간을 가득 채웠다. 계절이 흘러서 어느덧 겨울이 닥쳐왔고, 먹을 것이 없었던 파랑새는 여름내 부지런히 일한 덕택에 숲속에서 제일가는 부자로 소문난 들쥐를 찾아가 먹을 것을 조금만 나누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들쥐는 파랑새의 게으름만을 탓하며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박하게 내쫓았다. 결국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파랑새는 얼어 죽고 말았다.
들쥐는 파랑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지내면서 행복한 삶을 마음껏 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파랑새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고, 숲속이 매우 적막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들쥐는 잘 먹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견딜 수 없을 만큼 심심하고 공허해졌다. 전에는 당연하다고 느껴지던 파랑새 노래의 빈자리가 엄청나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들쥐는 혼자라고 느껴지자,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했고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파랑새의 노랫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지만, 파랑새가 죽고 없는 지금, 그것은 불가능했다. 파랑새의 노랫소리를 듣지 못한 들쥐는 점점 식욕을 잃어갔고 결국 곡식이 가득 쌓인 곳간에서 정신적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물질 때문에 인간이 어리석음을 범할 때 흔하게 들어봤던 우화이다. 사람들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물질의 풍요가 곧 행복과 직결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물질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다만 그 기대감이 지나쳐서 삶의 목표가 된다면 물질은 언제든지 부족하기 마련이다. 절대로 만족할 정도로 채워질 수 없는 것이 물질이다. 마치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더하는 것과 같은 일치라고 생각된다.
만약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하다가 곧 죽을지도 모르는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가장 먼저 날까? 확실한 것은 물질에 대한 걱정보다는 어떻게 하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일 것이다.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중병이라면 그동안 모았던 많은 물질과 바꾸더라도 건강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살아가면서 물질은 정말로 중요하지만,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잃어가면서 욕심을 내면서까지 무리하지는 말자고 권고하고 싶다.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덕목이 있지만 중요한 하나가 만족할 수 있는 절제력이다. 살면서 크게 불평하지 않고 만족하면서 살아갔으면 한다.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의 반복은 만족보다는 불평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만족하는 마음이 없다면 물질은 끊임없이 쌓여만 가지만 아까워서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쓰레기에 불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