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판매와 양심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2-10 04:39 조회수 : 81
무인 판매와 양심
우리 말에 "하지 말라고 강조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라는 말이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당뇨가 걸려서 음식에 조심해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를 듣고나서는 평상시에는 관심도 없었던 음식까지도 더 먹고 싶은 것도 같은 이치라고 생각된다. 지금은 먹는 것 앞에서 항상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아침에 먹는 사과는 금 사과라는 말이 있지만 항상 망설인다. 사과를 먹으면 혈당이 급격하게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사과를 비롯한 과일은 쳐다보지 않고 살아간 지도 제법 되었다.
사과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연천에 근무했을 때 학교에서는 학생에게 저녁 8시 30분부터 9시까지는 간식을 제공한다. 저녁을 5시 30분에 먹으니 그 시간이면 배가 출출할 시간이라서 이런 저런 간식을 준비해서 먹는다. 학생들이 제일 좋아했던 간식은 피자나 햄버거, 치킨 등이다. 하지만 바나나, 사과를 비롯한 제철 과일도 함께 제공해 주었다. 특히 사과는 아침에 한 개씩을 꼭 먹이려고 노력했다. ᅠ사과는 주로 연천 지역에서 생산되는 사과를 구매했다. 지구의 온난화 영향으로 대구 지역에서 사과를 재배하시던 농부들이 20년 전부터 연천이나 포천으로 이주해 와서 과수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연천 사과는 제법 맛과 상품성이 우수하다.
학교에서 교장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수업이 시작되면 내가 할 일은 별로 없어서 연천 지역의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걷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고, 특히 농사를 짓는 논 밭이나 과수원을 자주 지나친다. 특히 가을에 사과가 빨갛게 달린 모습은 지금 생각해 봐도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이다. 어느 가을날에 산책을 하다가 과수원을 지나고 있었는데 한쪽에 박스 위에 비닐봉투에 담긴 사과가 놓여있었다. 그 사과는 과수원에서 딴 사과인 듯싶었다. 사과가 놓여 있던 상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한 봉투에 만원입니다. 필요하면 통에 만원을 넣고 가져가세요." 아마도 지나가던 차량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데 무인 판매였다. 혹시 돈을 내지 않고 그냥 가져가면 어쩌려고 저럴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생각을 바꿔보니 과수원 주인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람에 대해서 믿음을 갖지 않는다면 무인 판매는 원천적으로 할 수 없다. 만약 사람을 믿지 못하면 불안할 수 있다. 하지만 주인은 그런 불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사람들을 믿었던 것이다. 주인의 믿음에 걸맞게 사람들은 양심을 어기지 않고 돈을 내고 사갔다. 그런 소소한 상호간의 신뢰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밑걸음이 된다는 것을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에게 그런 소중한 가르침을 주신 사과밭 주인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면서 그분은 어떤 분인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