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가치
사람은 육체와 정신이 구분되기 때문에 몸은 한 침대에 같이 누워 있으면서도 마음은 각기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다. 비슷한 환경 속에 살아도 전혀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갖는게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처럼 두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밭에서 일을해도 그중 하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만 다른 하나는 버려질 것이며, 여자 둘이서 같이 맷돌을 갈고 있지만 그 운명은 정반대로 바뀔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이는 동양의 선현들도 비슷하게 표현하고 있다. 노자와 장자는 세속적인 가치의 세계와 도의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를 가르침에서 잘 나타내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 제41장이 그 좋은 예이다. 거기에서는 밝음과 어둠, 전진과 후퇴, 평탄함과 기복, 최상의 덕과 응기응변 등이 서로 자리를 맞바꾼다. 그리고는 이 모든 가치의 뒤바뀌는 일이 일어나는 원인을 성품의 차이에서 찾는다.
성숙한 사람은 진리를 소개받게 되면 힘써 이를 행하고, 반쯤 성숙한 사람들은 ‘그럴 듯하다’ 정도의 반응을 보이면서도 실천하지 않고, 전혀 성숙되지 않은 사람들은 ‘사는데 무슨 소용이 있어’하고 무시하며 지나간다. 노자와 쌍벽을 이루는 장자 역시 ‘하늘이 보시기에 되지 못한 인간이 사람들의 눈에는 훌륭한 인간으로 보이기도 하고, 사람들 눈에 위인으로 보이는 인간이 하늘의 눈에는 덜된 인간으로 드러난다’고 말함으로써 진리의 세계가 세속적 가치의 세계와는 차이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먼저 사람이 되어야 참다운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진리의 파악은 교육이나 과학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됨됨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의 말씀을 하실 때마다 늘 덧붙이시는 말씀이 있다. “알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 평범하면서 비범한 모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들은 알아듣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 신앙인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있으려면, 세상이 떠받드는 가치들에 대한 태도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야 한다. 그 차이를 유지하는 일이 때로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나라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놓쳐서는 안될 생명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