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새로운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이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4-17 06:29 조회수 : 52

새로운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이 


고백성사와 면담을 하다보면 적잖은 사람들이 지나간 과거에 묶여 고통받으며 신음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릴 적 겪은 마음의 상처나 아픔을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붙들고 있는 것이다. 참 딱한 일이긴 한데 마땅히 도와줄 묘책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심리 상담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아서도 있지만 스스로가 변화되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의 병이 근원적으로 치유되기란 쉽지 않다.  

이럴수록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 있는 까닭은 자신이 겪었던 상처의 실체가 뚜렷이 있고 그것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도 시퍼렇게 살아 꿈틀거리면서 삶에 깊숙이 들어와 영향을 미치며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우리의 몸도 어제의 몸이 아니다. 생각이나 마음도 어제와 다르지 않다. 날씨조차 기온이나 바람의 흐름이 어제와 다르다. 하룻밤 자고 났더니 그 모든 게, 참으로 ‘나’를 포함한 온 세상이 새로운 세계를 맞아들인다. 어제 잠자리에 들기 전의 ‘내’가 오늘 아침 그대로 깨어났고, 어제 청명하던 날씨가 오늘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어제의 ‘나’는 이미 오늘의 ‘내’가 아닌 것이다. 몸도, 마음가짐도, 모두 새로워진 것이다. 


자연은 물론 우리 인간은, 이처럼 비슷한 모습으로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의 연속선상에 있다. 단 한 순간도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한 적이 없다. 이 점을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런 가치관을 갖고 있으면 우리는 과거의 상처에 사로잡혀 허우적거리며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다. 

지난 시간들 특히 과거의 상처를 없었던 것로 치부해버리는 말이 아니다. 때로는 그런 아픈 기억도 분명히 소중하다. 그러나 적어도 그 기억을 꺼내서 반복적으로  가슴을 쓸어내리지는 말자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붙들고 슬퍼하느라 소중한 현재를 허비하지 말자. 만약 그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현재의 삶을 즐기지 못하고 그저 과거의 상처나 후비면서 세월을 허비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세상은 참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내가 변하고, 주변이 변하고, 자연과 우주 만물이 변하고 있다. 끝임없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신선한 감동이 다가와서 마음을 설레게 하고 또다시 삶을 힘차게 살고자하는 의욕을 샘솟게 한다. 지나간 모든 상처들을 뒤로한 괴롭더라도 지금 자리에서 현재의 삶을 음미하면서 다시 새롭게 시작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