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어느 교우의 유언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5-04 05:57 조회수 : 47

어느 교우의 유언 


인간의 욕망은 본성에 뿌리가 깊숙이 박혀서 죽음에 이른 순간까지도 쉽게 털어버리지 못한다. 그 욕망이 질과 양에 있어서 정당한 것이든 부당한 것이든 크기의 작고 큼을 상관하지 않고, 영원한 안식을 위한 순간에 이승에서의 욕망을 깔끔히 잊고 잠을 자듯이 조용히 눈을 감는다면 그 모습은 평화스러운 죽음의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도 욕망의 불씨를 안고 소유에 관한, 재산에 얽힌 유언을 늘어놓는다면 이거야말로 마지막 순간까지도 버리지 못하는 속물 인간의 추대를 보이는 셈이다. 그러나 어떤 이의 유언에는 아름다운 욕망이 있다. 소유는 소유되, 그 소유를 위한 작은 욕망이 너무나도 성스럽고 향기로우며 아름답다. 그러기에 차마 욕망이라고 해석하기 보다는 간절한 인간의 마지막 소원으로 풀이하는 것이 올바른 정답이 될 것 같다.


내가 오랫동안 알아왔던 형제님이 계셨다. 참으로 열심히 그리고 선량하게 사신 분이었다. 사업을 하셨지만 때로는 너무나도 순수했다. 가까이에서나 멀리에서나, 어디에서 언제 보든 늘 천주교인다운 아름다운 마음가짐을 갖고 계셨다. 그분은 나를 본당신부로, 나는 그분은 본당의 사목위원으로 더없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분은 약주를 한 잔하시고 기분이 좋으면 나에게 전화를 거셔서 “신부님 사랑합니다”를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분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그분이 살아계셨을 때보다도 더 크고 더 깊은 마음으로 그분을 존경했다. 그 까닭은 그분이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마지막 유언을 들었을 때였다. 그 분이 남긴 자그마한 유언은 욕망이 아니라 성스러운 소망이었다. “꼭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신부님! 가는 길이 먼 것만 같습니다. 가는 길에 쉬게 되면 주님을 향해서 고개를 숙이고 성경을 읽고 기도서를 보고 성가를 부르려고 합니다. 부디 성서와 기도서와 성가집을 가지고 갈수 있기를 허락해 주십시오.”

나는 그분의 마지막 병자성사를 집전하면서 너무도 아름다운 소망에 눈물을 보였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그분에게 바치는 제가 흘린 눈물이 그분의 손을 주님께서 잡아주시고 당신의 안에 끌어 앉는 힘이 되게 해주소.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