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자연 재해와 빈곤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6-08 06:19 조회수 : 52

자연 재해와 빈곤 


지난 2004년 크리스마스에 인도네시아에 시작한 지진에 의해 인도양 일대에 들이닥친 지진해일은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의 문명이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어떻게 보면 산업혁명 이후 인간들이 저지른 무자비한 파괴행위에 대해 묵묵히 참아왔던 자연이 일거에 복수를 한 것 같은 무시무시한 느낌도 없지 않다. 


인도양의 해안은 최상의 휴양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 아름다운 해안에 세계의 자본이 몰려들어 본격적인 휴양지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해안가의 울창한 맹그로브 숲과 산호초들이 사라졌다. 맹그로브 숲과 산호초는 해일을 막아주는 천혜의 방어벽인데 관광객들의 식탁을 위한 왕새우 양식장을 만든다는 이유로 파괴한 것이다. 이런 난개발로 인해 지난 20년간 타이 해안의 맹그로브 숲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해안가에는 숲과 산호초 말고 또 다른 방어벽이 있다. 모래언덕과 강이다. 그러나 모래언덕은 깎여나가 골프장이나 쇼핑몰이 들어서거나 해안도로로 변하였다. 강은 산의 나무들을 마구 베어낸 결과 토사층이 쌓여 거의 평지처럼 되어버렸다. 결국 해안선을 침범한 해일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육지를 휩쓸고 다녔던 것이다. 


자본주의에 의한 세계화의 가장 큰 특징은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것이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의 해안도시 어디를 가나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호화로운 시설물로 가득하다. 세계화의 기치 아래에서 가난한 소농의 운명은 뻔하게 정해져 있다. 규모의 경제에서 손해만 보기에 농지를 팔고 해안가 도시나 휴양지로 이동해서 날품팔이 노동자가 되거나 관광객을 상대로 싸구려 기념품을 파는 것이다. 전망 좋고 숲이 우거진 번듯한 곳은 땅값이 비싸 감히 쳐다볼 엄두도 못 내고 살기에 환경이 좋지 않은 저지대에 허술한 집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자연재해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ㅓ 당한 것이다.


끔찍한 재난은 강자에게는 자신들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좋은 구실이 된다. 서구 열강들이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 구호기금에 앞장을 서지만 순수하게 나서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자신들의 영향력 증가를 위해서 돈을 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모범적으로 선행을 한 국가가 하나가 있었다. 유독 희생자가 많았던 독일이다. 독일은 피해를 많이 보았음에도, 관광수입에 의존해 살고 있는 현지인들을 위해 지속적인 관광을 독려하는 배려심을 보였다. 


역사를 통해서 많은 국가들이 기금을 통해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며 새로운 수탈구조를 강화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오른손이 한 선행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야 말로 진실한 선행이라는 것은 개인이든 국가이든 마찬가지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