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따돌림 그리고 양심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6-14 10:16 조회수 : 52

 따돌림 그리고 양심


예전에 좀 모자라는 사람을 얕잡아서 ‘팔푼이’라고 불렀다. 동네 사람들은 팔푼이를 바보라 손가락질을 하고 놀렸다. 팔푼이는 동네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왕따’였다. 

일본어에 ‘무라 하찌부’ 라는 말이 있다. 마을의 규범을 어기거나 잘못을 하면 마을 사람들 모두 그 집과 왕래를 끊고, 결국 동네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 직역하면 ‘마을의 팔푼이’이다. 공교롭게도 우리말과 똑같다. 한쪽은 약간 모자라는 사람이고, 다른 한쪽은 마을의 규칙을 어긴 사람이니 약간 의미가 다르지만, 양쪽 다 따돌림을 당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런데 왜 ‘팔푼이’일까? 일본에서 ‘무라 하찌부’ 와 평소에는 상종을 하지 않지만, 딱 두 가지 일만 상대를 해 준다. 하나는 집에 화재가 났을 때 불을 꺼 주고, 또 하나는 죽으면 장례를 치러 준다. 즉 불끄기와 장례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나머지(8푼)는 상대를 안 한다는 뜻에서, 팔푼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무라 히찌부’는 일본식 집단주의의 따돌림 문화인 것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는 일본보다 오히려 훨씬 집단주의의 어긋난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전형적인 예가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왕따’ 라는 학교폭력 문제다. 사실 학교 폭력도 일본의 ‘이지메’에서 나왔는데 집단 괴롭힘이다. 불량서클인 ‘일진회’도 일본 만화를 모방해 만들어진 집단인데 우리의 학교폭력 수준이 일본보다 훨씬 심하다. 학교폭력으로 자살하는 학생의 숫자가 매년 10명이 넘는데, 정작 일본은 한두 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래서 급기야 학교폭력법률이 제정되고 상시적인 감사나 상담을 통해서 없애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학교폭력 법률을 가지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그러나 법률 제정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의 인식과 대응이다. 


일본은 단 한 명의 자살에도 전국이 떠들썩하다. 과거에 이지메로 고통을 당한 아이가 자살을 예고하는 편지를 교육부 대신에게 보내자, 자정이 넘는 시각에 담당국장이 집에 찾아와서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면서 제발 죽지 말라고 설득을 했다고 한다. 만약 피해 학생이 나오면 가해자 가족은 물론이고, 담당 장관이나 심지어는 총리까지 나서서 사죄 행사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소중한 생명이 죽어도 한 줄의 뉴스로 끝난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는 사람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권력이나 법 지식으로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뻔뻔하게 살아가고 있다. 요즘 나라를 시끄럽게 방통위원장을 임명하는 과정에서도 그런 아쉬움을 느낀다. 자신의 아들이 명백하게 학교폭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없던 시절에 행한 일탈이라고 하거나 이미 합의를 했다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모습 속에서 과연 그들이 지도자라고 불리울 자격이 있는가? 를 의심해본다. 우리 사회가 법률도 좋지만 그보다는 더 소중한 양심이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