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신뢰가 없으면 재주가 있어도 펼칠 수 없다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5-28 20:53 조회수 : 76

신뢰가 없으면 재주가 있어도 펼칠 수 없다


“사람이 신뢰가 없으면 존경받는 사람일 가능성은 작아진다. 이는 황소가 큰 수레를 끌 때 끌채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라는 말이 있다. 끌채란 수레와 멍에를 연결해 주는 도구로 아무리 힘이 좋은 황소와 훌륭한 수레가 있어도 서로 연결해 주는 연결고리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의미이다. 공자는 신뢰가 없는 사람은 끌채가 없는 수레와 같다고 하였다. 신뢰가 없는 사람은 인두겁은 썼지만, 사람으로 기능을 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스위스 설화에 ‘빌헬름 텔’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사냥꾼으로 석궁의 장인이었다. 하루는 폭정을 일삼던 영주가 빌헬름 텔과 그의 아들 발터 텔을 나란히 광장에 세웠다. 두 부자가 광장 중앙에 걸린 영주의 모자에 인사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사실 영주는 빌헬름 텔의 유명세가 못마땅해서 트집을 잡은 것이다. 그래서 영주는 빌헬름 텔에게 망신을 주고 싶었다. 영주는 아들 발터 텔의 머리에 사과를 올려 두면서, 빌헬름 텔에게 석궁을 쏘아서 사과를 맞추면 두 부자를 용서하겠다고 제안했다. 두 부자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순간이었지만 빌헬름 텔은 영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석궁으로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명중시켰다. 


물론 빌헬름 텔은 소문난 명사수였지만,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자칫 긴장하거나 아들이 순간 움직이면 화살이 아들의 신체에 관통할 수 있다. 하지만 빌헬름 텔은 아들이 자신을 믿고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고, 아들 발터 텔은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버지의 화살로 사과를 맞출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두 부자의 상호 신뢰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서로서로 속이면서 살아가는 삶이 만연해 있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누구도 믿지 말라’라는 말이 마치 하나의 진리처럼 여겨지고 있다. 인생이라는 수레를 몰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믿음이라는 끌채를 떼어 내면 아무런 일도 못 할 것이다. 나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인 세상에서 아무도 믿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오히려 현명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남을 믿고 남에게 신뢰를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믿음을 갖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상생과 공존, 그리고 조화를 배제한다면 나의 모든 것은 즉시 멈추어 버릴 수도 있다. 

믿음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일도 성사시키고, 불신은 확실해 보이는 일도 실패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바보처럼 서로를 믿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믿음이 내 삶의 새로운 국면의 시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