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소중한 인연과 오늘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2-23 20:41 조회수 : 89

소중한 인연과 오늘


세월은 자기 나이만큼의 속도로 흘러간다는 말이 있다. 가벼운 농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에는 공감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어렸을 때는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싶은데, 그때는 왜 그렇게도 시간이 안 가는지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부터인지 고장 난 시계가 정신없이 돌아간다는 것이 느껴졌다. 60이 넘고부터는 세월의 속도는 마치도 둥근 공이 경사진 비탈길을 내달리는 것처럼 하도 빨라서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다.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한 계절이, 그리고 한 해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금요일 오후에 베트남 도안 신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병 치료를 위해서 한국에 입국하려다 법무부에 의해서 거절된 후에는 교구에서 2,000km나 떨어진 호찌민시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혼자서 머물면서 검사와 치료를 병행하고 있었는데, 간에 전이된 암의 크기가 7cm로 커져서 돌아오는 금요일에 수술받기로 확정했다는 소식이었다. 조심스럽게 “불안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도안 신부는 오히려 담담하게 “저는 괜찮아요” 하는데 콧날이 시큰해져서 한동안 말하지 못했다. 도안 신부가 조심스럽게 수술하기 전에 와서 며칠을 함께 보냈으면 어떻겠냐고 말하면서 병자성사를 청했다. 


나는 고민 없이 바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서는 즉시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했다. 오늘 새벽에 떠나서 금요일 새벽에 돌아올 예정이다. 함께 더 있고 싶지만, 금요일에는 한국에서 10년 동안 공부했던 백춘조 베드로, 서진우 바오로 신부가 중국으로 귀국하는 날이라서, 새벽에 도착해서 두 신부님을 공항에서 만나 커피 한잔을 마시고 배웅할 계획이다. 살아오면서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억지로 맺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고, 맺어진 인연은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유는 만남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맺어주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제 생활을 하면서 공부시켰던 외국인 신부들은 6명이다. 그분들이 서품식이 있으면 중국 그리고 베트남까지 가서 모두 참석했다. 모든 분들이 전부 소중한 인연이지만 아무래도 아픈 도안 요셉 신부가 제일 신경이 쓰여서 기도도 제일 많이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기도 중에는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도 생각해 보게 된다. 


언젠가 암 판정을 받고 낙심했던 교우가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얼마 안 남은 인생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자.”라고 결심하고는 한동안 손 놓았던 농사일과 집안일을 다시 시작했다. 논과 밭에 씨도 뿌리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도 어울리면서 기분 좋게 술도 한 잔 마셨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하루와 바꿀 만한 걸음이 되도록 힘차게 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더 아파졌지만, 마음만큼은 더 건강해졌다고 하면서 환하게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

혹시 나는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월의 흐름을 탓하거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지내고 있지 않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이 값진 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무의미하게 보내는 오늘이 어제 죽어간 사람에게는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