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위로해 주기 전에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2-22 04:59 조회수 : 80
남을 위로해 주기 전에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기지만, 젊어서부터 싫어하는 세 가지 형태의 사람들이 있다. 첫째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 둘째 의심이 많은 사람, 셋째가 전화를 안 받는 사람이다. 이유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들을 지금도 싫어한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나도 세 가지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요즘 세 번째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제이기에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 오더라도 무조건 전화를 받는다. 그게 광고 전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던 내가 요즘 아주 가끔은 전화를 받기가 귀찮다.
며칠 전에 운동을 나가려고 하는데 전화가 울렸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고민이 생길 때마다 전화를 걸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하지만 그날을 선뜻 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바로 며칠 전에 통화를 했었기에 받지 않았다. 그 친구는 통화를 하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오랫동안 하는데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나 별로 유쾌하지 않은 소문 같은 것을 말하기 때문에 가끔은 통화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통화를 길게 하는 것을 싫어한다. 통화 중에 다른 전화가 오면 그 전화를 꼭 받아야 할 것만 같아서 안절부절못한다. 왠지 위급한 전화로 나의 도움을 청하는 신자들의 전화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그날 통화를 거절했지만, 친구에게는 전혀 미안한 감정을 갖지 않았다. 내 결정이 잘한 것이라고 구태여 포장하진 않겠다. 그날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은 분명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설프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보다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대화는 아예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은 나를 위해 이기적인 선택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연락을 받으면 함께 고민하지만 내가 해줄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에게 연락해서 당신의 답답한 속마음을 털어놓고 차 한잔 마시면서 대화를 나눌때 편안함을 느낀다면 나는 기꺼이 시간을 내어줄 용의가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도 일단 내가 여유가 있을 때 해야 한다. 내 마음이 편하지 않거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불안한 상태라면 대화를 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항상 우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상태가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형편도 그런 감정도 아닌데 과연 누가 타인의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건강해야 타인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에너지가 고갈되어서 주변을 살필 힘이 없을 때는 잠시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것은 자신과 타인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갖는다고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