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여인
사제로 살아가면서 대안학교 교장으로 근무했던 것은 나에게 여러 가지 의미와 사제 삶의 방향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산골에서 미술학교를 운영하면서 나도 미술에 관해서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집안에 미술을 전공했던 가족이 두 명이나 있지만 그동안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교장은 학교에서 행정적인 사항을 해결하면 되는 위치이지만, 그래도 미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간이 나면 유튜브나 책을 통해서 그림 공부를 나름 꾸준히 했었다.
글을 쓰는 지금 돌아보면 그림 중에 인상이 남은 그림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그림이지만 나에게는 많은 의미를 부여했던 작품이었다. 그림의 내용은 한 노인이 젊은 여인의 젖을 먹고 있는 그림이었다. 젖을 먹고 있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머리 대부분이 벗겨지고 남은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한 노인이었다. 수염은 덥수룩하게 길었고 상의는 벗겨진 채였는데, 두 손이 뒤로 묶여 있고 그가 아래에 걸치고 있는 검은 옷은 죄수복이나 수의처럼 보였다. 노인의 모습도 모습이지만 노인에게 젖을 물린 젊은 여인의 모습 또한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비록 고개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을 풀어헤친 채 한 손으로는 젖을 잡았고, 다른 손으로는 노인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것을 보아 억지로 젖을 먹이는 것이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 자체로는 외설적으로 보였고, 살짝 거부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그림의 내용을 알게 된다면 이 그림의 한 컷의 위대함을 깨우치게 된다. 그림에 나오는 노인은 푸에르토리코의 독립 투사였다. 그가 독재정권에 의해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그에게 내려진 형벌은 ‘음식물 반입 금지’였다. 독재정권은 그 노인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해서 굶겨 죽이려 한 것이다. 그에게는 결혼한 딸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출산 후이지만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감옥에 찾아갔다. 아버지는 정말 아무것도 먹지를 못해 의식조차 희미해져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본 딸은 아무 망설임 없이 가슴을 풀어헤쳤고, 막 아기를 낳아 퉁퉁 부어오른 젖을 아버지에게 물렸다. 바로 그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 <노인과 여인>이라는 그림이고 이 그림은 현재 푸에르토리코 국립박물관 입구에 걸려 있다.
그림 앞에 나 자신이 부끄러웠던 것은, 미술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아직도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저 보이는 대로만 볼 뿐,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와 숨겨져 있는 진실을 알지 못하면서도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들통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과 사건을 통해서 진실과 세상의 흐름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노인과 여인>을 통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