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십자고상 'INRI'의 의미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7-15 05:12 조회수 : 72

십자고상 ‘INRI’의 의미 


피정을 하는 동안 많은 시간을 자연과 함께 하고 싶었는데 비가 지속적으로 오는 바람에 많은 시간을 성당에 앉아 있었다. 어제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는데 평소엔 잘 보이지 않던 예수님의 죄명인 ‘INRI’가 유난히도 눈에 띄었다.  서기 33년경, 로마 총독 빌라도 관저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관심이 집중된 재판이 열렸다. 피고는 나자렛 출신 예수라는 인물로, 유다교의 핵심 계명인 안식일법과 정결례법에 대한 도전적 발언과 유다인들에게 신성시 여기던 성전을 모독했다는 죄명으로 고발을 당해서 국민들과 유다인 원로들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그러나 단지 성전의 권위를 무너뜨렸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사형에 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유다인 종교지도자들이 두 번째로 적용시킨 죄목이 정치적 선동죄였는데 이는 로마제국에서 절대로 용서가 안되는 중범죄였다.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사람들은 대역죄를 범한 폭도, 탈영한 군인, 성전 강도와 같은 중죄인들이었다. 당시의 죄인들이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집행이 되면 반드시 십자가 꼭대기에 죄명을 적었다. 예수님의 죄명은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였다. 이를 라틴어로 적어보면 Iesus-Nazarenus-Rex-Iudaeorum이다. 이 죄명을 약칭으로 적으면 ‘INRI’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십자고상에 붙어 있게 된 것이다. 


신앙인들에 있어서 십자가는 세 종류가 있다.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져야 하는 십자가, 남이 나에게 지우는 십자가, 또 하늘이 나에게 허락하신 십자가이다.  피정을 하면서 나에게 주워진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며 십자가는 고통스럽게 지고만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가슴에 품고’ 부활의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임을 깊이 묵상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박히신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1코린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