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8-06 21:32 조회수 : 62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 


신자들이 나에게 물어보는 것 중에 대답하기 싫어하는 것이 있다. ‘최고’ 또는 ‘가장’이라는 말이 붙은 질문이다. 예를 들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가 곤란해진다. 이유는 사람의 입맛이나 마음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한식이 좋지만, 어떤 때는 일식, 어떤 때는 스파게티 같은 음식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대답자체를 애매하게 한다. “남들이 만들어주는 음식은 다 맛있어요.”


예전에 보좌신부로 근무할 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미사중에 생각없이 말했다가 아주 혼이 난 적이 있다. 누가 물어보면 대답을 안 하다가 다른 본당으로 떠날 무렵에 칼국수를 좋아한다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신자들이 칼국수를 맛있는 곳이 있다고 하시면서 사주겠다고 하시거나 심지어는 집에서 끊인 칼국수를 철가방 안에 가져다 주시는 할머니도 계셨다. 그런데 문제는 인사발령이 나기로 했다가 사정이 생겨서 이동하지말고 일 년을 더 근무하라고 주교님으로부터 통보를 받은 것이다. 그 후로 일 년 동안은 내가 평생 먹을 칼국수를 다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지금은 칼국수는 거의 입에 대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음식은 나만이 간직하고 먹어야 하는게 진리이다. 

 

어떤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할 때도 가급적으로 ‘가장’ 이나 ‘최고’라는 단정적 표현은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오직 한 가지만이 ‘가장’ 이나 ‘최고’ 가 될 수 있기에, 본의 아니게 그것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가장’ 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질문을 종종 받으셨다.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는 표현대로 그는 예수님의 답변에 시비를 걸기 위해 질문을 한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 당시에는 율법의 계명이 613가지에 이르렀고, 바리사이들에게도 어떤 계명이 가장 중요한가에 대한 일치가 없었다. 이 질문 자체가 예수님을 곤란하게 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저없이 답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덧붙이신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이 표현에서 예수님의 강렬함을 느낄 수 있다. 율법 교사는 시비를 걸려고 ‘가장 큰’ 계명이라고 물었는데, 예수님은 한 술 더 떠서 ‘가장 크고’에 덧붙여 ‘첫째 가는’ 계명이라고 단정적으로 답변하신 것이다. 율법 교사는 더 이상 예수님께 시비를 걸 수 없었다. 이유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은 당시 율법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의 함정을 파놓은 질문을 피하면서도 당시의 기득권들이 만들어 놓은 인간적인 수많은 계명들을 제쳐 놓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가장 중요한 큰 계명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새롭게 그리고 분명하게 알려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