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용서를 청하는 것도 용서를 해주는 것도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8-01 05:24 조회수 : 62

용서를 청하는 것도 용서를 해주는 것도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죄를 지은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라고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숫자가 과한 듯싶지만 되짚어 보면 미움이라는 것이 일회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용서 또한 끝없이 되풀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살다보면 미움은 빗장을 닫아 걸어도 파고드는 바람과 같이 초대하지 않아도 슬며시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는 불청객과 같다. 그리고 한 번 마음에 들어오면 도통 나갈 줄 모른다. 그러고는 수시로 괴롭힌다. 미움의 반대라면 용서가 있다.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미움은 초대장 없이 들어오는 불청객이지만 용서는 끊임없이 초대해도 쉽게 자리 잡으려 하지 않는 낯선 손님 같다는 점이다.


사목을 하다보면 어느 본당이든지 사사건건 반대하는 분들이 계신다. 나쁜 뜻은 아니겠지만 심기를 건드려서 늘 불편하다. 그럴 때는 정면으로 돌파를 하는데, 사심 없이 본당을 운영한다는 원칙 아래에 늘 공개적으로 진행하면 대부분의 신자들은 공감해 주셨고 그래서 큰 과오가 없이 추진했던 일들은 잘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사건건 반대를 하시던 분이 다치셨다고 해서 병문안을 갔었다. 병자성사를 집전이 끝난 후에 그분은 나지막 목소리로 그동안 죄송했다고 말씀하셨다. 죄송한 마음은 진작에 가졌지만 용기가 생기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몸이 장애가 생기니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 같아서 고백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용서하는 것만큼 용서를 구하는 마음 또한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더 깨달았다. 사람들은 용서는 잘못한 사람이 청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용서를 구하는 것도 용서해 주는 것도 마음을 거슬러 흘러야 하는 것이고 보면 피해를 본 사람이 먼저 용서를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 덕분에 그 이후로는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미움보다는 내 자신이 미움을 떨쳐 버리지 못한 옹졸함에 대해 더 많이 묵상하게 되었다. 


살다보면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잘못하고도 심지어는 우기는 사람도 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잘못을 시인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살다보면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누군가의 잘못에 돌을 던지는 것은 누구나 있는 일이지만 그를 감싸안는 것은 누구나 있는 일이 아니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 흔들지 않는 꽃이 없듯이 미움과 용서 사이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삶이지만 끝내 길을 잃지 않았던 순교 성인들의 후예답게  오늘도 일흔일곱 흔들려도 일흔일곱 딛고 일어서는 오늘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