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7-25 20:42 조회수 : 86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요즘 일을 열심히 해야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도무지 의욕이 움직이려 하지 않을 때가 자주 있다. 마치도 몇 년 동안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움직이던 벽시계가 갑자기 멈추는 것처럼, 나의 에너지와 열정도 수명이 다해서 방전된 건전지 같다는 느낌을 받곤한다. 한번 무기력의 늪에 빠지면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게 되고 새로운 것은커녕, 기존에 하던 것을 유지하기도 버겁다. 매일 반복하던 일도 급격하게 피곤해지고, 꼭 해야 할 일이 앞에 있으면 한숨부터 쉬게 되니 누가 보면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로마에서 열리는 ‘젊은이들의 희년’ 행사를 위해서 출국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는 부주임 신부를 보면서, 나도 전에는 풋풋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하는 마음을 가져보게 된다. 미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거울을 보다가 문득, 나도 한낱 늙은이에 불과하다는 걸 새삼 깨우치게 된다. 

오늘 낮에 성당 마당에서 개미 한 마리가 자신의 몸뚱이보다 몇 배나 되는 큰 빵조각을 열심히 옮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너는 무엇을 위해서 그리 열심히 사니”라고 물었지만 그건 어쩌면 나에게 묻는 말이었을 것이다. 눈을 들어 둘러보니 세상은 여전히 나를 빼놓고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사람은 본시 힘이 빠지면 괜히 감상에 젖게되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엔, 내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땐 아무것도 몰랐지만 푸르고 뜨겁고 재빨랐다. 돌아보면 내 청춘에는 까닭 모를 사랑이, 미움이, 원망이 있었고 사랑한다는 한마디에 모두를 버릴 수 있는 담대함과 맑음이 있었다. 다 늙은 나이에 청춘을 예찬하는 이유는 그 자체만으로 풋풋한 내음이 나고 때로는 뼈저리게 그 시절이 그립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서서히 알아갈 때쯤, 내 청춘은 저 너머로 사라지고 난 뒤였다. 문뜩 젊은 시절에 누군가가 나에게 한 말이 어렴풋하게 생각이 난다. “젊은이가 명심해야 할 것은 시계를 보지 않아야 한다.”


내가 청춘을 추상적으로 기억하는 건, 가슴에 새겨진 상처조차도 젊음이라는 그릇 안에 모든 걸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춘은 몰랐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늘어난 주름과 전만큼 생기도 없고 탄력도 줄었지만,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억지로 해보았다. 무엇이든 바닥을 찍으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없는 에너지로, 결과가 뻔하지만 그래도 시도한다는 자체로 며칠은 충분히 버틸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의 모습도 나쁘지 않다. 나이를 먹는 건 청춘이 가지지 못한 차분함을 얻었으는 더 잘하려 하지 말고 시간에 몸을 맡겨보려고 한다. 비록 확실한 성공은 이루지 못했지만 열심히 살아온 나를 그 누가 감히 비난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