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농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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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35도가 넘는 불볕더위 때문에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우 때문에 전국이 수해로 난리이다. 서울은 충청도나 전라도보다는 비가 적게 와서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비가 그친 후에 성모상 주변을 돌아보니 나무와 풀이 눈에 띄게 잘 자라있었다. 역시 식물은 햇살과 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비가 멈추면 풀을 뽑아야 할 것 같다.
예전에 작은 텃밭에 채소를 키워봐서 풀을 뽑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나와 주변 사람들이 먹을 채소라서 농약을 전혀 쓰지 않았기에 늘 잡풀이 자라고 진드기와 송충이를 비롯한 여러 벌레들이 자랐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내가 기르고자 하는 채소보다는 잡풀이 훨씬 더 잘 자란다는 사실이다. 특히 요즘처럼 여름에는 아무리 부지런히 뽑아도 뒤돌아서면 여기저기에 깔릴 정도로 끈질기게 살아난다.
사람들도 억세고 끈기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잡초로 비유한다. 잡초는 내가 키우는 작물에 방해가 되는 것을 인위적으로 구분한 것이다. 풀을 뽑는 일이 귀찮다고 방관하면 밭 전체가 잡초로 가득하게 되고 농작물의 수확은 눈에 띌 만큼 줄어든다. 그렇기에 농사란 잡풀과의 싸움이 반이라고 말한다. 농부가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서 제초제를 뿌리는 간단한 방법을 쓸 수도 있지만, 그것은 풀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각종 벌레나 심지어는 채소가 자랄 수 있게 하는 가장 기초적인 재료인 땅과 물도 죽인다. 농부는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직업이기에 농사를 지을 때는 기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가라지 비유가 있다. 가라지 비유는 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세상에 매우 잘 어울리는 비유이다. 성급한 이들은 나쁜 사람을 공동체에서 내쫓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람과 죄인을 구분하는 일은 하느님의 종말 심판 때에 맡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선인과 악인을 가려내는 기준이 모호하기도 하고 그 일이 절대 쉽지 않을뿐더러 잘못하면 멀쩡한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래서 의인과 죄인에 대한 구분과 판단은 하느님께 맡겨야 한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미움으로 보복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방법은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처럼 사랑만이 원수를 벗으로 만들 수 있다. 그 과정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뼈저리게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면서 신앙인이다. 비록 힘들더라도 예수님의 말씀처럼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미움이 생기면 농부를 생각해 보자. 밀밭의 가라지는 주님께 맡기고 마음 안에서 쉼 없이 자라고 있는 미움, 증오, 시기, 질투, 게으름 등의 잡풀을 뽑으면서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