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자그마한 슈퍼마켓의 사장님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6-04 07:22 조회수 : 67

자그마한 슈퍼마켓의 사장님


미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제의방에 들어가면 복사들이 기다리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미사 전에 복사들에게 말을 건넨다. 복사들이 긴장하지 않도록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전례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야기를 하지만 대부분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에 대해서 물어본다. 대부분은 대답을 명확하게 하지 못한다.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좌신부 때에 한 복사가 당당하게 ‘자그마한 슈퍼마켓의 사장님’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 가진 않았지만 속으로 ‘왜일까?’라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청소년기에는 원대한 꿈을 갖으라고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어떤 친구가 군인이, 어떤 친구가 경찰이 되고 싶다고 하면 대부분은 기왕이면 참모총장이나 국방부 장관, 경찰청장이 되는 꿈을 꾸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린 학생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서다. 한번은 아들을 의대에 진학시키고 기뻐하시던 한 자매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자매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눈만 뜨면 서울대 의대에 가라며 노래를 불렀더니 서울대는 아니더라도 지방대 의대라도 가더라고요. 어쨌든 괜찮아요. 그렇게 말한 덕분에 의대에 간 것 아니겠어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매님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큰 꿈을 다른 말로 하면 ‘큰 그릇’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릇이 크다면 물이 반만 차도 사람들은 ‘물이 참 많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 하지만 그릇 자체가 작다면 물이 차고 넘쳐도 ‘물이 적다’라고 말한다. 큰 그릇엔 많은 물도 채울 수 있고 적은 물도 채울 수 있지만 작은 그릇엔 적은 물밖에 채울수 없다. 이를 꿈으로 비유한다면 큰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선택지가 더 많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이 이상을 따라잡기가 결코 쉽지는 않다. 욕심은 무한한데 현실적으로 주어지는 것들엔 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나의 꿈이 진정 나의 것인가를 자문하는 일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때문에, 부모와 나의 꿈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그러한 경우가 허다하다. 큰 꿈을 갖는 것보다 값진 것은 온전한 나만의 꿈을 키우고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이다. 살다보면 나의 능력보다 커다란 욕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욕심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곤란하다. 일단 지나친 욕심을 멈추어야만 나의 꿈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그럴 때 진짜 꿈을 향한 도전의 길이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