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희망은 겨자씨와 같다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3-12 05:43 조회수 : 76

희망은 겨자씨와 같다


저녁 미사를 끝내고 레지오 선서와 훈화를 위해서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성모상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는 일을 반복하는 분이 계셨는데, 신자가 아닌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분은 작은 회사에서 줄곧 중간층 관리 업무를 맡아온 40대의 젊은 가장인데, 경제가 나빠지면서 얼마 전에 회사에서 해고통지서를 받아서 낙담하다가 성당으로 자신도 모르게 들어왔다고 했다. 신자는 아니지만 어려서 어머니를 따라 성당에 몇 번 왔었던 기억은 있다고 했다.  


차마 집에는 실직당한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출근하는 척 나와서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돌아다녔지만,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고 한다. 간신히 면담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불합격 통지를 받고 이젠 정말로 배달일이라도 해야 하나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이지 두려운 것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몸이 힘든 것보다 정신적으로 너무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척 낙심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그 분에게 “앞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어때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분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무기력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커다란 암흑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그럴 것 같았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니는데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고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바로 이렇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지배하기 시작하면 삶에 필요한 동력은 당연히 떨어지고, 모든 게 부담이 되어 버린다. 희망을 잃은 사람은 사기가 떨어지고, 그런 상황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발걸음을 가로막을 것이다. 


복음 말씀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 “하느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라는 질문을 했고 예수님은 겨자씨와 같다고 답변은 주셨다. 이 성서 구절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나는 ‘희망’이라는 단어와 연결해서 해석하고 싶다. 겨자씨가 아주 작은 씨앗에 불과하지만 심어졌을 때는 새들이 날라 와서 둥지도 짓고 새끼도 낳고 키우는 커다란 나무로 자라기 때문이다. 살면서 꼭 필요한 것들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나에게 한다면 나는 지금 그 젊은 사람을 위해서 ‘희망’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겨자씨처럼 작은 희망이 심어졌을 때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도 커다란 나무로 자란 것처럼, 우리의 작은 소망들이 여러 가지 결과를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겨자씨가 너무 작아서 커다란 나무로 자랄 것이라는 믿음을 갖지 않으면 겨자씨는 심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작은 씨앗에 불과하지만, 인내와 성실함을 갖고 정성껏 나의 삶에 ‘희망’이라는 씨앗을 심는다면 훗날에는 반드시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결과물로 활짝 피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겨자씨와 희망’의 진정한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