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주님을 만난 것처럼
‘하느님은 어떤 분인가’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매일 강론과 글을 통해서 하느님과 믿음에 관해 설명하고 있지만, 솔직히 하느님을 만난 삶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가끔은 내가 신자들의 종교 생활에 있어서 손 깃발을 들고 달달 외운 것을 설명하는 관광 가이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예비자 교육과 신자 재교육을 하면서 하느님을 ‘시작과 끝이 없으시며, 아니 계신 곳이 없이 곳곳에 계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라고 설명을 해왔다. 그러면서도 하느님, 계시, 은총, 하느님과 신앙을 말과 글로 풀어가는 것이 아주 낯설고 너무 관념적이라는 양심의 가책이 마음 한구석에서 있었다. 30년 동안 사제 생활을 했는데도 내가 믿는 하느님을 이 정도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데에 대한 자괴감도 느꼈다. 어쩌면 육신적이고 물질적 삶에 우선해서 하느님을 만나지 못했거나, 어쩌면 만났어도 알아보지 못했고 목소리를 들었지만 알아듣지 못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진정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만나는 방법은 무엇인가?’보다는 ‘어떤 삶에서 하느님을 만났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바구니에 생선을 담았으면 생선 비린내가 나고 술에 취한 사람에게서는 술 냄새가 나듯이 하느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하느님 냄새를 풍겨야 한다. 하느님의 냄새가 나는 사람은 ‘사랑’과 ‘자비심’이 풍기는 사람, 주님의 뜻을 따르며 모든 일에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일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진리를 모르는 것을 무지라고 하는데, 무지하게 되면 죽음 너머 세계에 대해 알지 못해서 캄캄하게 되고, 이는 하느님을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하느님의 음성을 들어도 알아듣지 못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물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베드로를 통해서 하느님을 만난 인간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베드로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만난 순간 자신이 누군지 깨우치게 된다. 먹고 사는데 충실한 가장으로 살아왔지만, 하느님 앞에 선 자신은 죄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피하고 싶었다.
하느님 앞에 선다는 것은 양심 앞에 서는 것이다. 그래서 욕심과 이기심, 욕망과 비겁함의 죄가 다 보이게 되니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베드로는 고기잡이 기적에서 하느님을 만났고, 그때 비로소 이제까지 오랫동안 설명 들어 왔던 하느님이 아닌 순수의 하느님을 만났다. 그분이 내뿜는 빛의 눈 부심으로 인해서 자신의 온 존재가 드러났고 순간 모든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아버지께서 완전하심 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완전한 믿음이 고백 되는 순간을 맞은 것이다.
우리도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 나도 베드로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길에 투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며 진리를 위한 순명으로 나를 바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