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의 의미
오늘 복음과 독서에서 주제어는 '단식'이다. 사순시기에서 대표적인 단어를 꼽으려면 '사십'이라는 숫자와 '회개'와 '단식'일 것이다. '광야의 사십 일 또는 사십 년'은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에게는 '정화와 준비의 시간'을 의미한다. 모세는 사십일을 시나이산에서 지내면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였다. 엘리야 예언자는 이사벨 왕비의 박해를 피해 광야의 길을 사십 일 동안에 밤낮으로 걸어 호렙산으로 들어가서 하느님을 새롭게 체험했다. 모세와 엘리야는 40일 동안에 자신의 어려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영적 힘을 새롭게 체험하고, 영적 힘으로 자신을 새롭게 채웠다.
오늘 마태오 복음에서 유대인들은 '단식'을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닌, 하느님과의 협상 또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서는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라고 항의성 질문을 하고 있다. 그들은 당신이 훌륭한 예언자라면 "적어도 우리 스승 요한처럼 단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예상했던 답변을 하지 않으셨다.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모습보다는 그 안에 담겨 있는 내면의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돌려서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드리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라는 말씀처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단식이 아니라 내가 굶주림으로 그 결과물이 남들에게 이로운 형태로 드러나는 단식이야말로 진정한 단식이라고 강조하신 것이다. 이는 마치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고 인정받기를 즐기는 우리들의 부족한 면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계신 것이다.
'재의 수요일'에 재를 바르는 전례로 시작한 사순시기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영적인 광야'로 초대하시는 시기이다. 사순시기 동안 우리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방해하던 것들을 말끔히 정리하고 하느님과 함께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불필요하고 시끄러운 외적, 내적 잡소리를 제거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더욱 또렷하게 듣고 실천해야 한다. 또한 교회에서 권장하는 단식, 애덕 실천, 기도 그리고 ᅠ피정은 사순시기를 거룩하게 보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물건, 돈, 시간, 건강, 지식, 재능 등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너무 많아서 하느님께 다가가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하느님의 자녀로 살고자 노력하는 우리는 '영적인 삶'과 '물질적인 삶'을 조화롭게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