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오늘은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이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회개’를 상징하는 재를 머리에 바르면서 고난의 시기를 맞이한다. 머리에 재를 바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디에서부터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고민하는 날이다. 그리스도교인이라면 하느님의 구원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예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시다가 기어이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셨다. 비록 예수님은 그 뜻을 완성하지 못하셨지만, 제자들을 뽑으시어 교회로 하여금 사명을 계승토록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지 이천 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은 하느님의 정의와는 멀어져만 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세례는 받았지만, 신앙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고, 영성체는 매번 영하고 있지만 예수님의 삶을 따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신자로 사는 것은 괜찮지만 사도직에 응답하지 않고 신앙을 액세사리처럼 여기며 발바닥 신자로 살아가고 있다. 신앙생활의 기본 자세인 예수님 안에서 행복을 얻으려 하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물질이나 권력 그리고 명예를 교회로 추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 앞에서는 예수님의 생애는 예전에 있었던 에피소드쯤으로 여겨진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고 싶다면 마르코 복음 3장 14절을 반드시 묵상해야 한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시고, 파견하시어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갖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구절을 가슴에 새겨두고 절대 지침으로 삼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야 한다.
제자로 산다는 것은 첫째로는 ‘예수와 함께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제자는 늘 스승의 음성과 체취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성체성사로 주님을 영접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둘째는 ‘말씀을 선포하는 자’이다. 복음을 선포하려면 나는 이웃과 어떤 관계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내가 모범을 보이면서 소비문화의 이기주의 삶에서 벗어나서 복음 말씀대로 ‘회개한 후 복음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셋째로는 ‘악령을 추방하는 능력을 받은 자’들이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행하신 기적의 절반은 악령을 추방하고 마귀 들린 이를 치유하는 일이었다. 악령과는 단 한 번의 타협도 없으셨다. 우리 시대의 악령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과도한 소비문화, 투기 사행심을 조장해서 교회와 성체성사를 모독시킨다. 현대 악령이 가장 힘들어하는 대상은 무소유이다.
그래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가톨릭의ᅠ성직자에게 청빈을 강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인들은 스스로 늘 질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 안에 예수님이 없는 종교가 되고 하느님을 믿되 실천하지 않는 비상식적인 신앙인이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