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불관용의 불관용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10-15 22:59 조회수 : 93

불관용의 불관용


한국사회가 한 명의 선거 조작범이자 정치브로커 때문에 적지않은 혼란에 빠졌다. 공정해야할 민주주의 선거에서 조작을 했다는 의심과 적지 않은 여당 정치인들이 연루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겉으로는 공정을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겠다는 집단이 있다고 하니 참으로 우려스럽다. 예전에 ‘성공한 쿠테타는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전대미문의 법원의 판결문이 생각난다. 결국에는 다음 권력에 의해서 단죄를 받았지만 만인 앞에서 정의롭고 공정해야 할 법원의 판단이 상황과 대상이 달라졌다고 해서 기준이 바뀌는 장면은 참으로 서글프다. 


나는 이 장면에서 한 명의 철학자가 생각이 났다. 그 이름은 나의 젊은 시절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칼 포퍼’라는 철학자다. 칼 포퍼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 철학자였는데, 자신의 조국인 오스트리아가 나치의 마수에 빠지자 영국으로 건너가 활동한다. 그리고 자신의 조국에서 벌어진 참상을 바라보며, ‘대체 무엇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을까?’라는 의문을 푸는 것을 자신의 철학의 중심 과제로 삼았다. 


그가 나름대로 내놓은 해답은 자유의 역설, 민주주의 역설, 관용의 역설 즉 ‘세 가지의 역설’이었다. 자유의 역설이란 자유를 마냥 허용하고 어떤 행동도 규제하지 않다보면 남의 자유를 통째로 부정하는 세력이 활개를 치게 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역설이란 민주주의적 방식은 무조건 정당하다며, 법과 도의에 어긋나는 일조차 ‘국민의 뜻대로’ 가능하도록 한다면 국민을 언론과 사법기관을 통해서 적당히 속이고 부추긴 독재자가 합법적으로 집권하는 일이 생긴다고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관용의 역설이다. 관용이란 참으로 중요한 가치이고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관용이 지나쳐서 폭력적인 생각이나 행동까지 인정하면 우리는 관용 자체를 지킬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칼 포퍼는 ‘불관용의 불관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사상과 정치적 견해의 자유를 기본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이지만 지나친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나치 깃발을 금지하고, 인종차별이나 남녀차별을 소재로 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규제하는 일 등이 불관용의 불관용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약자들에게 공포감이나 인격모독에 해당되는 방법으로 법의 적용이나 교육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완벽한 법은 있을 수가 없다. 부족하고 결점이 있는 법이지만 상식과 양심을 갖고 적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양심’이 가장 큰 덕목이자 이상적인 법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