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상처를 감싸주는 현명한 마음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12-18 04:25 조회수 : 87

상처를 감싸주는 현명한 마음 


지난 글에서 진주는 상처로부터 시작된다고 언급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끝임없이 경쟁을 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고 끝임없이 주기도 한다. 내가 차지하느냐? 빼앗기느냐?는 체면 뿐만 아니라 생존과도 연결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고까지 한다. 

그러나 아무리 경쟁의 사회라고 해도 사람은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서로가 배려하는 마음이 반드시 필요하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기도 하지만 돌고돌다보면 나의 허물을 덮어 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배려를 상대방으로부터 받았을 때 삶의 의욕을 키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들에게 얼마만큼 배려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화가가 있었다. 초상화라는 것이 얼굴과 외모를 사실대로 그려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소 예쁘고 젊게 그려주어야 의뢰인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가능한 범위 안에서 마음에 들게 그려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상화를 잘 그린다는 소문을 들은 왕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화가가 왕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하다가 심각한 고민에 빠졌는데, 다름아닌 왕의 이마에 커다란 상처가 있었던 것이다. 화가는 아무리 초상화라고는 하지만 왕의 이마에 난 상처를 그대로 화폭에 담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대로 그리면 왕의 위엄에 손상을 입힐 것 같았고, 그렇다고 상처를 빼고 그린다면 초상화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화를 주어야만 했다. 그래서 화가는 순간 고민을 했던 것이다.

한참을 생각하던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왕은 대단히 흡족해했다. 화가는 고민 끝에 한 가지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왕이 이마에 손을 짚고 생각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왕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마의 상처를 가릴 수 있어서 좋았고, 화가의 입장에서는 사실대로 초상화를 그리면서 상처를 그리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던 것이다. 화가의 현명함이 왕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만족감을 주었다.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보게되고 그 과정 안에서 상처를 주고 받게 된다. 그렇다고 남의 허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표현한다면 상대방이 나로 하여금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화가가 보여준 배려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상처나 허물을 보았다면 그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사랑을 통해서 그 허물을 현명하게 가려줄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좋아하는 성경에서도 사랑은 이 세상 모든 허물을 덮어준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