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하느님과 밀알 하나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12-30 04:29 조회수 : 119

하느님과 밀알 하나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 12,23-26)

 

복음에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대목은 자주 인용이 되는 성경 구절이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모든 것을 끊고 모든 것을 떠나보내고 생명까지 포함한 모든 것을 버릴 때 하느님으로부터 얻어지는 구원과 사랑, 희망과 영광의 신비를 한 알의 밀알을 보고서라도 깨우치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간절한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올 한 해를 살아오면서 복잡한 인간관계 안에서 마음을 썩으면서도 사랑한 것,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용서한 것, 무시당하면서도 순종하고 봉사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한 알의 밀알로써 더 큰 열매를 맺기 위하여 썩어 간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것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하느님 사랑의 표현법이었다. 누군가를 위하여 자신을 썩힐 수 있는 희생물로 내어놓는다는 것은 은총이요, 인간이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는 최고의 예물이 될 수 있지만 인간 본능 면에서 볼 때는 아픔이요, 고통이며 두려움 중의 하나다. 


인간 구원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희생물로 내어놓으신 예수님께서도 잡혀가시기 직전, 인간적인 아픔과 고통과 두려움을 피하시고 싶어서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야만 다시 살 수 있는 삶, 완전히 죽고 남김없이 썩을 때 완전한 제물이 될 수 있는 삶이 그리스도교의 신비다. 올 한해 신앙 안에서 우리 모두는 밀알 한 알로서 세상에 던져졌다. 수고하고 땀 흘림으로써 싹이 트는 밀알, 모욕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함으로써 성장하는 밀알, 마침내 상처받고 죽임을 당함으로써 열매 맺는 밀알이 되기 위하여 세상에 던져졌다. 

다가오는 2024 새해에는 자신을 완벽하게 썩힐 있는 밭인 그리스도 안에 묻히는 것을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옛날 사제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하신 것처럼 또한 많은 순교자들이 알의 썩는 밀알로 살아가심을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그렇게 다시 썩어 열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 밀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