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갈대와 같은 신앙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1-09 01:42 조회수 : 81

갈대와 같은 신앙


한적한 시골에 술집이 하나 생겼다. 조용하던 마을은 술꾼들이 모이고 밤새도록 마시고 떠들어대며 북적거렸다. 그래서 인근 교회는 기도할 때마다 큰 방해를 받았다. 그러자 교우들은 하느님께 그 술집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기로 결정했다. 이 소문이 술집 주인의 귀에 들어갔으나 술집 주인은 코웃음만 쳤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벼락이 그 술집에 떨어져 순식간에 모두 타 버렸다. 술집 주인은 동네 교회에서 기도했기 때문에 벼락이 떨어져 자신의 전 재산을 날리게 되었다면서 법원에 재판을 걸었다. 반면에 교우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면서 변호사를 고용해서 맞소송을 진행했다. 재판 끝에 판사는 아주 흥미로운 결론을 내렸다. 즉 술집 주인은 기도의 능력을 확실히 믿고 있었고, 반면에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신앙을 풍자한 것이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사실 사제인 나 자신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 대해서 확신이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냉담하는 친구들을 만났지만, 그들에게 다시 신앙생활을 하라고 강하게 이야기를 못했다. 명색이 신부지만 나 자신의 믿음도 연약하고 보잘것없는데 어떻게 타인에게 확신에 가득한 믿음을 심어 줄 수 있겠는가. 신학생부터 수많은 날들을 기도하고 살아왔지만 얼마나 진실한 믿음을 갖고 기도했던가?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나는 꼬부라진 허리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며 성당문을 들어서는 노인들을 바라보면서 나의 신앙생활을 반성하곤 한다. 노인들은 허리가 꼬부라졌지만 나는 믿음이 꼬부라져 있고, 그분들은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지만 나는 로만칼라라는 명예에 전적으로 의존했고, 그분들은 말없이 행동을 보일 뿐이지만 나는 행동 없이 입만 나불대는 사제로 산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한다. 

하느님께 대한 지식을 가진 이는 수없이 배출되지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진 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를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분명히 하느님께 대한 지식은 노인들에 비하여 우월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그분들보다 낫다고는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르네상스 시대에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와 브루노를 통해서 지식과 믿음의 차이를 있다. 사람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천동설을  주장하던 교회의 압력에 굴복해서 자신의 신념을 철회한 갈릴레오는 목숨을 유지했지만, 브루노는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음으로써 화형을 당했다

이처럼 지식은 언제든지 위기가 닥쳐오면 부인하고 번복할 있으나 믿음은 순교를 당할지언정 신념을 지켜내는 것이다. 베드로와 바오로를 비롯해 수많은 성인성녀들이 품었던 믿음, 믿음이야말로 기적을 일으키는 열쇠요 우리가 추구해야 신앙의 목표다. 입술로만 기도하고, 신앙에 대한 지식이 많으면 무엇하겠는가? 바위와 같은 믿음이 없다면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신앙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