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만찬 성목요일
며칠 전에 비가 오더니 사방에서 산수유, 목련, 개나리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온통 꽃으로 세상이 만발할 것이다. 봄은 누가 뭐라해도 꽃의 계절이다. 나무는 꽃을 위해서 지난 겨울에 매서운 추위를 묵묵히 버텄다. 그리고 꽃도 시간이 지나면 열매를 위해서 스스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세상의 피조물들은 이처럼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자연의 나무와 꽃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는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어 주신다. 예수님 시대에는 발을 씻어 주는 것은 종이 주인을 위한 존경의 표시이다. 유대인이 살던 지역은 비가 별로 오지 않아서 길은 늘 건조하고 먼지가 많다. 그래서 외출을 마치고 집에 들어올 때는 위생을 위해서 발을 씻는데, 종은 주인의 발을 씻어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고 계신다. 이는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을 위한 당신의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다. 마치도 꽃이 자신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몽우리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뒤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기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은 바로 섬기는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세족례는 단순한 정결 예식으로만 해석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예수님은 유다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의 발도 씻어 주셨다.
세족례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참사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과는 달리 매우 높은 차원의 사랑이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하늘나라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셨으며, 그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을 직접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려고 당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셨다. 예수님의 고통이 함께하는,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최고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계속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과 전례를 통해서 당신께서 보여주신 사랑이 당신을 믿고 따르는 우리 안에서도 가득하길 원하고 계신다. 그 사랑으로 하여금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알아 뵙고, 하느님 나라로 가도록 우리를 이끄신다. 주님의 사랑을 깊이 받은 우리는 이제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랑을 이웃과 나누어야 할 것이다. 그 나눔은 남들에게 보이는 생색이 아니라 주님처럼 온전히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