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죽을 것인가? 한 번만 죽을 것인가?
이사를 다닐 때마다 짐을 많이 줄였지만 그동안 또 살림이 늘었다. 물욕이 많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물건은 늘어만 간다. 어제 우연히 책장에 있는 자그마한 박스를 꺼내보았더니 정리가 안 된 사진들이 잔뜩 있었다. 지금은 모든 사진이 디지털이니 부피를 차지하는 사진이 없지만, 보좌신부를 할 때만해도 필름사진이었다. 빛이 바랜 사진을 꺼내서 들여다보니 함께 사진을 찍었던 분들 중에는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도 다수가 있었다. 하기야 25년이라는 세월이 적은 세월은 아니니 당연한 것인데 왜 이리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지 모르겠다.
죽음은 주민등록증을 보고 차례대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방문하겠다고 미리 연락이 오는 법은 더더구나 없다.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나의 죽음은 어떻게 다가올 것이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죽음은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렵다. 때로는 외면하고 싶지만 죽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는 무척 중요하다.
죽음은 삶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장례식장에 가는 일을 카페에 가는 일과 똑같은 일상의 일로 인식하고,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사제로 살면서 죽음을 오랫동안 보아왔던 경험으로는 사람들은 죽음 그 자체보다도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을 더 두려워한다. 정작 육체적으로 의식을 잃고 나면 지극히 평온한 상태라는 것을 타인의 죽음을 통해 수없이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을 매일 두려워하면 매일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래 전에 읽었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라는 책에서 병으로 죽어가는 모리교수가 ‘어떻게 죽을지 알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으며, 언제든지 죽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하면 더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내용이 기억이 난다.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사제 피에르 신부가 발간한 <단순한 기쁨> 이라는 책에서도 ‘죽음이란 오랫동안 늦춰진 친구와의 만남 같은 것이며, 매일의 삶에 충실할 때 죽음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이 두 분이 내린 죽음의 정의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바로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고 해서 준비를 잘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자칫 매일 죽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인간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만일 죽음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더 고달플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짐승들도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만이 죽음의 의미를 알고 대처 할 능력이 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죽음이 있기에 삶도 의미가 있다. 만일 죽음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이렇게 소중하지도 경건하지도 않을 것이 뻔하다. 삶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