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와 물
한참 전에 있었던 일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가난하지만 성당에서 열심히 봉사한 부부가 조그만 식당을 차렸는데 얼마 안가서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번창했다. 그런데 문제는 장사가 잘될수록 성당에 오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성당에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어쩌다 손님과 식사를 하러 찾아가면 “신부님, 죄송합니다. 사는 게 바빠서 성당에 못 나갔네요.” 하고 말씀은 하지만 예전의 말이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돌아올 때 주머니에 봉투를 쿡 찔러 주면서 “신부님, 얼마 안 되지만 필요하시면 언제라도 말씀하세요.”라는 말도 영 마음에 거슬렸다. 그 부부에게 재물이 들어오면서 마음으로 모시던 하느님께서 그 가정 안에서 쫓겨나신 것이다.
예전 사람들은 황금을 ‘흑사심’이라 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총명함과 올바른 판단을 흐리게 하며 양심을 썩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열심하던 교우가 재물 때문에 하느님과 멀어지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돈과 인간의 관계는 마치 배와 물과도 같다. 물이 없으면 배는 무용지물이지만 물이 배 안에 들어오면 배는 침몰하듯이, 우리 인간에게도 돈이란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 돈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면 급기야 인간은 파선된 배와 같이 되고 만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는 있지만 돈으로 잠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책을 살 수는 있지만 지혜를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음식을 살 수는 있지만 식욕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집을 살 수는 있지만 돈으로 행복한 가정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병원을 살 수는 있을지언정 돈으로 건강을 살 수는 없다. 그리고 돈으로 황금 십자가는 살 수 있지만 돈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돈은 필요하지만,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된다는 성서의 경고 말씀이 있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돈만큼은 절대로 양보 못 하겠다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가치관이다.
복음에서도 예수님을 따르고 싶어 하는 부자 청년을 예로 들면서 우리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거짓말도 안 하고 도둑질도 안 하고, 간음이나 살인은 더더욱 안하고, 부모에게 효도한 부자 청년이 무엇을 더해야 영원한 생멸을 얻을 수 있겠는가를 물어왔을 때 예수님의 대답은 아주 단호하고 분명했다. “가진 것을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라라.”
옛말에 ‘개도 안 물어 가는 것이 돈이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그것을 남에게 아주 일부라도 함께 사용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인가 싶다. 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하지만, 물이 배 안에 넘치면 배가 침몰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면서 살아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