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벼룩의 한계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1-27 04:40 조회수 : 103

벼룩의 한계


한 과학자가 유리컵 속에 벼룩 한 마리를 넣었다. 그는 벼룩이 곧 가볍게 뛰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다시 해보고 또 해봐도 벼룩은 계속 뛰어나왔고, 결과는 언제나 똑같았다. 사실 벼룩은 높이 뛰기 선수이다. 실험자는 이 벼룩을 다시 유리병 안에 넣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병에 유리뚜껑을 덮었더니 벼룩은 뛰어 오를 때마다 계속 유리뚜껑에 부딪혔다. 벼룩은 곤혹스러워 보였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뛰어오를 때마다 부딪히던 벼룩은 점점 꾀를 내기 시작했다. 벼룩은 뚜껑 높이에 맞추어 뛰는 높이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나자 벼룩은 뚜껑에 더 부딪히지 않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뛰었다. 


며칠 뒤에 실험자는 조심스레 뚜껑을 열어두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벼룩은 여전히 컵의 높이만큼만 뛰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높이 뛰어 병에서 탈출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다. 하지만 사흘이 지난 후에도 벼룩은 여전히 그곳에서 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럼 벼룩은 정말 이 컵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진 것일까? 절대 아니다. 단지 벼룩은 마음 속으로 이 컵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인정한 것뿐이다. 


우리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다. 그래서 학교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단어 몇 개더 외우게 하고 문법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거나, 수학 문제를 잘 풀 수 있도록 공식을 외우게 하는 게 절대로 아니다. 학생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교육열은 높지만 기대만큼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은 우물 안 개구리식의 교육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을 얼마만큼 갔느냐에 따라서 학교와 선생님이 평가가 되다보니 근시안적인 교육 결과에 혈안이 된 것이다. 그렇게 높은 교육열과 투자를 했지만 정작 세계적으로 알려진 석학의 숫자도 적고 노벨상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 주소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교육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신앙 안에서도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우리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을 그어놓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신앙공동체라는 것이 서로의 희생과 봉사가 있어야 운영되는 것인데 내가 선을 미리 그어놓고는 절대로 그 선을 넘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많은 신자들이 있음에도 언제나 봉사자가 부족해서 쩔쩔매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모두가 조금씩만 양보하고 희생한다면 활기찬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직 도달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신앙심이 아직도 부족하다는 증거다. 부디 우리 신자들은 벼룩처럼 자신의 한계를 미리 설정해 놓아서 자신의 잠재력을 잃어버린  어리석은 신앙인이 되지 않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