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나의 광야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4-16 01:37 조회수 : 72

나의 광야


오늘은 세월호 사고가 난지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난 이맘때면 나의 삶이 광야의 한구석을 걷고 있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용기가 부족한 나를 늘 자책하게 된다. 

나의 광야 체험은 시나이산을 오르면서 시작되었다.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은 무척이나 찬란하고 아름다웠고 사방은 온통 돌과 모래로 가득해서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든 환경이었지만 그 광야에도 우리가 보진 못했지만 생명들은 존재한다. 다만 우리들이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단정하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의 시각은 가장 정확한 것 같지만 사실 가장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광야를 찾아가셨고, 세례자 요한은 어떤 것에 이끌려서 광야에서 초라한 삶을 살면서 죄인들의 회개를 외치면서 살았을까? 우리들의 신앙의 선조들을 무슨 이유에서 광야를 일부러 찾아가서 수도 생활을 했을까? 광야에는 생명이 있고 척박한 가운데 가르침이 있기 때문은 아니까?

광야는 서울에도, 팽목항에도 그리고 이곳 대림동 한 구역에도 존재한다. 비가와서 아무도 없는 쓸쓸한 놀이터를 빙빙돌면서 문득 생각을 해보았다. ‘광야가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라면 나의 광야는 어딜까? 나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하느님을 찾고 있는가?’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은 시나이반도나 이스라엘 광야처럼 밤하늘의 빛나는 별이 없다. 가없이 뻗어 가는 고즈넉한 시간의 깊이도 없다. 하지만 내 욕심 때문일까, 소음으로 가득한 이 도시 공간에서 오히려 광야보다도 더 강렬한 태양과 뜨거운 모래밭, 그리고 더 풍요로운 밤하늘과 정적을 찾고 싶어 한다. 이곳,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인간 세상이야말로 하느님이 가장 가까이 계시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사람들 속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계셨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마귀 들린 사람, 창녀, 거지, 불구자 등 이런 가련한 사람들과 함께 하셨다. 그분은 그렇게 보잘것 없는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시기 위해서 이 지상에 오셨다. 그래서 그분은 누구보다 그들의 편이 되어주셨고, 때로는 친구가 되고, 스승이 되고, 의사가 되고, 위로자가 되어 주셨다. 


나는 가끔 상상을 해본다. 만약 그분이 서울 한복판에서 나에게 나타나셨을 때의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오늘도 나는 보이지 않는 그분을 찾기 위해서 성당에서 그리고 아픈 이들이 많은 병원에서 심지어는 대림동 중국촌을 헤매고 있다. 내가 찾고 있는 그분은 어디에선가 병들고 남루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계실 것만 . 나는 광야로 가는 , 멀고도 가까운 , 하지만 바로 우리 속에 있으리라 확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