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정신과 행복한 사람
내가 공동체 정신을 자주 언급하는 이유는 경쟁 사회에서 낙오되면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을 자주 목격했기 때문이다. 공동체 정신을 가진 사람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정도의 인식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주머니에서 몇 개의 사탕을 꺼내서 나누어 먹는 정도의 여유를 갖고 있다. 그에 반해 공동체 정신이 부족한 사람은 경쟁하면서 먹고살기도 바쁘다고 하면서 외면한다. 이런 부류 사람과의 대화는 그야말로 숨이 턱 막힌다. 주변을 돌보지 않고 사는 사람보다는 나눔을 실천하고 남의 불편함을 살피는 사람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책 <행복의 정의>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꽃 이름 따위를 알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 돈벌이에는 전혀 보탬이 안 될 텐데.”
행복한 삶의 방해 요소는 생존 경쟁이다. 이 경쟁은 단순히 먹고사는 것뿐만 아니라 순위의 영역으로 내가 얼마나 더 인정받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치 경주마처럼 달리면서 상대를 앞지르는 게 최고의 목표라면 뒤처짐은 곧 죽음과 도태를 의미한다. 그러기에 경쟁 사회에서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을 찾아 보기가 어렵다.
만약 경쟁에서 성공한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그렇다면 대체 뭐가 성공이고 행복일까. 분명한 것은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성공에 목말라서 누군가의 뒤꽁무니를 쫓기 바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우린 남들에게 이기거나 지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거다. 고통이 가득한 세상 같지만, 자세히 보면 행복을 위한 선하고 유쾌한 것이 많다. 조금만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면 다양한 것이 시선에 들어온다. 이러한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열쇠다. 이 땅에 태어나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모르는 체하고 맹목적으로 달릴 이유가 없다. 경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기에 나를 지나치는 수많은 것들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하늘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욕망이 도를 넘으면 인간을 망치고 결국에는 그로 인해서 좌절감을 느낀다. 누구나 욕망만 가득했던 젊은 시절에 실패로 무너졌던 경험을 했을 것이다. 나또한 오랜 기간을 방황하다가 어렵게 빠져나온 경험이 있다. 방황하던 삶에 브레이크를 밟으니 그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알게 되었다.
행복한 사람은 맹목적이지 않다. 그래서 자신만의 속도를 가지고 옆 사람의 안부 정도를 물어볼 정도의 여유를 가지면서 살았으면 한다. 살면서 원하는 목표에 조금 늦게 도착해도 괜찮다. 우리모두 다 함께 천천히, 오랫동안 달릴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