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복팔단의 교훈
진복팔단의 가르침을 요약해 보면 “가난하고 굶주리고 슬퍼하고 모욕당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만족하고 기쁨으로 가득할 것이다.”라고 축약할 수 있다. 진복팔단은 이승과 저승, 과거와 미래, 행복과 불행이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세계관을 강조하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 기뻐하는 사람 슬퍼하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대지에 밤낮이 바뀌듯이 한 사람에게서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이 오가는 것이고 그것은 이승과 저승에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죽어서 천당 간다는 내세에 대한 가르침이 심리적 위안일 뿐이고 혹세무민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는 생각은 지극히 단절적 사유이다.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세계만이 확실한 것이며, 내가 고통스러우면 모든 기쁨도 나에게는 무의미한 것이며, 내가 죽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여기는 것을 유물론의 ‘존재론적 세계관’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가령, 나무 한 그루가 베어지면 그에게는 슬픔이지만 그렇다고 숲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죽은 나무는 다른 나무의 거름이 되듯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에게 생명을 주고받아 존재하는 것이다. 자기에게는 자신이 중심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동서좌우 방향의 변두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홀로 존재하지 못하고 상호 유기적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이런 이해와 믿음을 ‘관계론적 세계관’이라 한다. 이승과 저승, 지상과 천상, 시간과 공간이 달라도 결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자연과 인간, 만물과 세계는 하나의 몸이라는 믿음이 신앙 공동체의 기본적인 영성이다.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적 시각이다.
예수님의 행복선언은 인과응보, 권선징악, 순응과 역린의 형식으로 풀이된다. 올챙이가 자라면 개구리로, 달걀이 부화하면 닭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개구리가 올챙이를 낳고, 닭이 달걀을 낳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여러 형태로 드러나지만 하느님 안에서는 본질은 같은 것이다. 그래서 불공평 불공정이 여전히 현실이지만 만사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어제 복음에서처럼 이승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속박 속에 살아간 이들은 저승에서 자유와 행복의 품에 안기게 됨을 이미 알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거지 나자로처럼 하느님과 기쁨을 공유할 수 있다. “지금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늘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존재의 원리에서 스스로 가난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청빈의 삶이라고 한다. 물질의 향유는 누구나 선망하는 본성이지만 신앙인은 영생의 응보를 알기에 스스로 절제하면서 함께 나누는 가난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