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부자의 구원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3-19 22:05 조회수 : 70

부자의 구원


오늘 복음에서는 중심적인 주제는 “부자는 구원받을 수 있는가?”이다. 우리 신앙생활의 바탕에도 “나는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매주 성당에 나오고, 하느님을 믿고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는 목적은 영원한 생명을 구원으로 여기고 그것을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살다보면 그 방향성에 대해서는 다소 혼돈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부자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나는 모든 물질을 포기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된다면 신앙의 목적과 현실은 다소 괴리감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부자에 관해서 언급을 2번 하셨다. 오늘 복음의 '부자와 나자렛의 죽음'과 '부자 청년의 구원'에서 였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에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의 내면에는 부자는 무조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하더라도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부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 더더욱 아니다. 단지 그 재물을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거나 재물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라자로가 부잣집에 구걸을 왔을 때 그 부자가 보인 모습은 냉정하고, 무관심이었다. 그래서 그 부자는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부자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이 힘들다고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바늘귀는 ‘천국의 좁은 문’이란 뜻보다는 바늘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굳어진 관념, 자기 지식,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신념이며 소유욕으로 인해 무너진 정신세계를 의미한다. 구원도 중요하지만, 가문의 전통을 핑계로 재물을 포기하고 싶지 않던 부자 청년처럼 우리도 그러한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깨달음’이란 ‘깨다’와 ‘깨뜨린다’에서 온 말이라 한다. 돌처럼 단단히 자기 믿음과 신념을 깨부술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달음에 이르러 자신의 본모습을 보게 된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른 신념이 깨어져 나갈 때 동시에 바늘귀가 깨지면서 구멍이 사라져 버린다.


오늘 복음에서부자와 나자로의 죽음 의미를 사순시기에 적용해서 묵상해 보았으면 한다. 살면서 재물이 꼭 필요한 것이지만 신앙인이라면 적어도 재물을 가장 먼저 생각해서 나의 신앙생활을 망쳐서는 된다는 것이다. 부자와 부자 청년에게는 재물이 신념이며 신앙이었다. 잘못된 신념에 갇히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세례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로 부르심 받은 모든 이들은 자신의 잘못된 신념을 버리고 구원을 향한 주님의 뜻을 찾아서 실행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