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르드의 성모 마리아
루르드는 피레네 산맥의 마지막인 라브당 산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루르드의 성채는 피레네의 요새였고, 18세기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성모 마리아는 1858년 2월부터 7월까지 18회에 걸쳐 벨라뎃다 수비루(14세)에게 발현하셨다. 연약한 양치기 소녀 벨라뎃다가 동생과 친구와 함께 땔감을 구하러 들로 나가기 위해서 개울을 건너려고 신발을 벗으려고 할 때였다. 아주 강한 바람소리와 함께 세상의 어느 누구도 감히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하신 부인이 저 멀리서 계시는 것이었다. 별 말씀 없이 부인은 아기의 천진함과 처녀의 순결함 그리고 모성의 부드러움을 지닌 채 푸른띠를 나부끼며 합장한 손으로 묵주알을 굴리고 계셨다.
당시 벨라뎃다의 상황은 별로 좋지 못했다. 부모는 너무 가난하여 자녀들을 제대로 교육하고 양육할 형편도 못되었다. 가족의 생계 수단이었던 방앗간마저 빚 때문에 저당 잡혀서 그야말로 끼니도 잇기 어려울 정도의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다. 동생이 태어나서 벨라뎃다는 이웃 마을의 아기를 잃은 집에 얹혀서 15개월이나 살다가 온 적도 있었다. 벨라뎃다는 그런 집의 맏딸이었다. 또한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던 벨라뎃다는 그녀의 일생동안 고통을 주었던 천식을 앓고 있었다. 워낙 가난한 집이라서 겨울철이면 제대로 난방이 안되어 비교적 난방이 잘되는 이모집에서 겨울을 나기도 하였다.
발현 첫 날의 상황은 꼼꼼히 잘 기록했던 에스뜨라드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재의 수요일 전주의 목요일(1858년 2월 11일을 말함)' 이었는데 날씨가 대단히 추웠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어머니께서 저희들에게 집에는 더 이상 땔나무가 없다며 걱정을 하셨습니다. 여동생 뜨와네뜨와 저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강가에 있는 마른 나뭇가지를 주우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선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잘못하면 가브 강에 빠질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이웃친구인 잔느 아바디가 남동생을 찾으러 우리 집에 왔는데 자신도 같이 가겠다며, 남동생을 집에 데려다 두고 다시 와서 함께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망설이셨지만 세 명이니까 가도 좋다고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처음엔 잔 나뭇가지들을 종종 발견하던 공동묘지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따라 그곳에선 아무것도 발견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브 강 근처까지 가는 옆길로 갔고 뷔예 다리에 도착해서는 강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 나을지 내려가는 것이 나을지 고심했습니다. 우리는 일단 내려가기로 마음먹고 산길을 따라 메라스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사비 방앗간 옆의 무쉐 드 라 피트의 농지로 들어갔습니다. 이 농지의 끝은 마사비엘 동굴 맞은편인데요,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방앗간 수로가 있어서 우리는 멈추어야 했습니다. 수로의 물살이 세지는 않았지만 물이 너무 차가워서 들어가기가 두려웠습니다. 잔느와 제 동생은 저보다는 덜 소심해서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물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건너편에 가서는 물이 차갑다고 소리지르며 허리 숙여 손으로 문질러 발을 녹였습니다. 순간 제가 물속에 들어가면 틀림없이 천식이 재발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보다 덩치도 크고 힘이 센잔느에게 업어서 건네 달라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싫어! 못오겠으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동굴 밑에서 나무조각 몇 개를 집어들고는 가브 강을 따라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징검다리를 만들고자 돌멩이를 물 속에 몇 개 던져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잔느와 여동생이 했던 것처럼 물을 건너려고 신발을 벗기로 했습니다. 신발을 막 벗으려는 순간 갑자기 폭풍우 같은 큰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오른쪽, 왼쪽 그리고 강가의 나무 밑을 보았지만 아무 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계속하여 신발을 벗을 때 첫번 째와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무 놀라서 꼿꼿하게 서 버렸습니다. 동굴 쪽으로 머리를 돌려보니, 마치 센 바람이 불듯이, 동굴 입구의 덤불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생각하고 말할 기력도 잃어 버렸습니다.
동굴 안에서 금빛 구름이 나왔고 잠시 후 젊고 아름다운, 지금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은 본 적이 없는, 정말 너무도 아름다운 여인이 동굴 밖으로 나왔는데 장미덤불 위에서 계셨습니다. 그분은 저를 보고서는 마치 저의 어머니처럼 미소를 짓고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였습니다. 순간 모든 두려움은 사라지고 이제는 제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눈을 비비면서 떴다 감았다 해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계속 미소를 지으며 제가 잘못 본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에 묵주를 꺼내들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여인은 머리를 끄덕이며 승낙의 표시를 했고 그 분도 오른팔에 걸치고 있던 로사리오를 손에 들었습니다. 로사리오 기도를 하려고 손을 이마에 대려고 했지만 팔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께서 성호를 긋고 나서야 저도 같이 따라서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여인께선 제가 혼자 기도하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 분은 손에 로사리오를 들고 계셨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 단이 끝날 때마다 저와 함께 영광송을 했습니다.
로사리오가 끝났을 때 그 여인은 동굴 안으로 들어갔고 금빛 구름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 여인은 16세에서 17세 정도의 젊은 여인이었으며 흰옷을 입고 있었고 허리 부분에 겉옷 밑단까지 흘러 내리는 푸른색 띠를 매고 있었습니다. 흰색 면사포를 머리에 쓰고 있었는데 그 면사포 안에는 허리 뒤까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엿보였습니다. 신발을 신지 않고 있었는데 발까지 내려온 겉옷이 발을 덮고 있었으며 겉옷이 겹쳐진 단에는 노란색 장미가 빛나고 있었다. 발에 꾸며진 장미의 빛깔처럼 금색고리로 연결된 흰로사리오를 오른팔에 들고 있었습니다.
그 분이 사라지자 잔느와 여동생이 돌아와서는 제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잔느와 동생은 저를 바보라고 놀렸습니다. 그리고는 같이 돌아갈 것인지 아닌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이제는 물을 건너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물이 마치 설거지할 때처럼 따뜻했습니다. 발을 말리면서 잔느와 여동생 마리에게 '너희들이 말한 것처럼 물이 차갑지가 않았다'고 하자 그들이 ‘차갑지 않다니 다행이구나. 얼마나 차가웠는데.'하는 것이었다.
나는 잔느와 마리에게 혹시 동굴에서 이상한 것을 못보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들은 못봤다고 말하면서 나에게 무엇을 보았ㅇ냐고 되물어 왔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하고 퉁명스럽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기 전에 잔느와 마리에게 비밀로 해달라며 동굴에서 생긴 이상한 일을 이야기하고 말았습니다.
온 종일 그 여인의 모습이 머릿 속에 맴돌았습니다. 저녁에 기도하면서 걱정이 되어 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이유를 물어보셨고 마리가 대신 대답했고 저도 낮에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머니께선, ‘환영이야. 그런 생각은 더 이상하지 말고 이제는 마사비엘에는 가지마라.’하셨습니다. 아무리 자려고해도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 여인의 얼굴은 너무 아름답고 인자하셔서 줄곧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하신 말씀은 소용이 없었다. 제가 헛 것을 보았다고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첫 날 발현의 이야기를 벨라뎃다는 시간에 따라 상세히 묘사를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금요일과 토요일은 동굴에 가지 않았지만 동굴에서 자신이 본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그 아름다운 여인을 또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이 갈수록 강하여졌다. 일요일이 되어 벨라뎃다는 잔느와 마리가 같이 가니 보내 달라고 어머니께 사정하였다. 처음엔 완강히 반대하던 어머니도 승낙을 하였고 셋은 떠나면서 작은 병에 성수를 담아가기로 하였다. 어른들의 생각처럼 악마의 소행이라면 성수를 뿌려서 막아낼 작정이었다.
벨라뎃다는 그간 집 밖에선 입을 다물었지만 동생 마리가 호들갑을 떨며 소문을 내버리는 통에 친구들도 따라 가겠다며 나섰다. 친구들이 새 옷으로 갈아입는 동안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잔느와 마리는 뒤에 오기로 했고 벨라뎃다가 가장 먼저 동굴 앞에 도착했으며 곧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 “저기에계셔! 저기에!”라고 소리를 지르며 친구들을 불렀다. 친구들은 무엇인가를 찾아 보려고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러자 한 친구가 말했다. “그 여자에게 뿌려!” 그러나 친구들이 본 벨라뎃다는 성수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들고서 땅에 붓는 것이었다. 여인이 미소짓는 것을 보고 벨라뎃다는 친구들에게 그 여인이 성수 땅에 붓는 것에 대해 즐거워 하신다고 전해 주었다. 그리고는 이내 무아경에 빠져버리고 한 지점만 계속 응시하였다. 그녀의 얼굴은 행복감으로 가득찼으며 그 표정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 날의 발현에선 돌발적인 작은 사건이 믿을 수 없는 발현 현상을 믿게 해주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그것은 늦게 도착한 잔느의 장난 때문이었다. 친구들을 놀려 주려고동굴 위에서 돌멩이를 굴린 것이었다. 친구들이 피하려고 도망을 가면서 벨라뎃다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그녀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친구들은 그녀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울고불고 소리쳤다. 이들의 고함소리에 사비 방앗간의 니콜로 아주머니와 그 여동생이 달려왔다. 두 사람도 이미 소문으로 사건내용을 들었기 때문에 필시 무슨 일이 생겼구나 생각하고 달려온 것이었다. 벨라뎃다를 움직이고 눈을 감기고 해보았지만 다 소용이 없었다. 니콜로 부인을 방앗간으로 다시 달려가서 아들인 안또니오를 불러왔다. 안또니오는 불려오면서 어린이들이 장난하는 줄 알고 있었다. 동굴 앞의 벨라뎃다를 본 그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훗날 그는 “그런 놀라운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내 자신이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 그 어린이의 몸에 손댈 자격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라면서 너무 아름다운 벨라뎃다의 표정을 본 당시의 충격을 전하였다. 그들은 겨우 벨라뎃다를 방앗간으로 옮겨올 수 있었다. 옮기는 동안에도 무아경에 빠져있던 벨라뎃다는 방앗간에 도착해서야 얼굴 표정이 이전의 평범한 방앗간 집 딸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니콜로 부부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벨라뎃다는 그 여인과 로사리오 기도를 같이 했으며 그 여인은 영광송만 했으며 기도가 끝나자 사라졌다고 답하였다.
이윽고 벨라뎃다의 어머니가 급히 들어왔다. 그리고 딸이 죽은줄 알고 울었다. 벨라뎃다가 앉아서 어머니에게 그동안의 이야기를 하자 그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서 소리쳤다. “넌 우리 가족을 웃음거리로 만드는구나. 그래, 성모 이야기, 은총, 위선적인 꼴, 다가져라!” 벨라뎃다는 두들겨맞기 시작했고 엉엉 울었다. 니콜로 부인이 어머니를 말리며 말했다. “무슨 짓입니까? 벨라뎃다를 이렇게 해도 되는 것입니까? 이 아이는 천사입니다. 당신은 하늘에서 온 천사를 자식으로 데리고 있는 것이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난 동굴에서 보았던 이 아이의 모습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벨라뎃다의 어머니는 좌절감과 감정이 복바쳐서 또 한번 울어버렸다. 그리고 어린 딸을 집으로 데리고 갔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벨라뎃다는 가끔 뒤를 돌아보곤 하였다.
당시 프랑스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물결의 태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멀리하고 있었다. 성모님의 발현에 대해 말하는 벨라뎃다는 정부당국과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으며, 발현장소에 가는 것마저 금지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모님께서는 벨라뎃다로 하여금 수 많은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물이 귀한 그 지방의 마사비엘 동굴에서 샘을 파게 하시고, 그 물로 불치의 병자들을 치유하는 기적을 시작하셨다. 7월 16일까지 모두 18번의 발현이 계속되었다. 발현 후 50년동안 4,000건 이상의 난치병 치유 사실이 보고되었고, 신앙의 기쁨을 찾은 이들은 이루다 헤아릴 수 없었다. 동정 마리아의 루르드 발현은 1862년 공인되었고, 잡목으로 둘러싸인 벽지의 동굴 속에 ‘원죄없는잉태’의 성모상이 1864년 성황리에 안치되었다. 1872년부터는 순례자가 더욱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오늘 날 그 수는 연간 200만 명을 넘는다.
오늘날까지도 그리스도의 치유 능력을 성모 마리아는 미사와 기도 그리고 루르드의 샘물을 통해 드러내고 계신다. 벨라뎃다는 1866년 루르드를 떠나 수녀가 되었으며, 35세를 일기로 1879년 선종하였고 1933년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