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7차례의 스페인 순례를 다녀왔지만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유일한 장소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다. 그만큼 스페인 성지순례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모든 신앙인들이 한 번쯤 꿈꾸었던 산티아고 대성당은 9세기경에 발견된 성 야고보의 묘 위에 작은 성당을 지으면서 시작되었는데, 그 후 여러 차례의 증개축을 통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성당의 외관은 16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1168년부터 20년 동안 당대의 최고 건축가 중의 한 명인 마태오의 지휘를 받아서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된 로마네스크 예술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브라이도이로 광장에 접한 정면 입구로 들어가면 영광의 문이 나온다. 전면에는 대성전 내부로 통하는 3개의 통로가 있는데 중앙은 그리스도인들, 왼쪽은 유대인, 오른쪽은 무슬림을 비롯한 이교도를 위한 것이다. 중앙문 기둥 위에는 성 야고보의 성상이 서 있는데 멀리서 찾아온 순례객들이 이 기둥에 손을 대고 순례를 마친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는 전통이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기둥은 닳아서 지금은 손자국마저 나 있어서 보호차원에서 희년을 제외하고는 아쉽게도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예루살렘, 로마와 더불어 3대 성지 중의 하나이다. 9세기 초 수도사 페라요가 야고보 성인의 무덤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유럽에 퍼져나갔다. 교황 칼릭스투스2세의 저서에 따르면, 어느 날 밤에 카를 대제의 꿈에 성인이 나타나서 “사도의 무덤을 해방시키기 위해 카를 대제가 십자군을 이끌고 먼 갈리시아로 진군할 것을 명령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산티아고 가는 길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야고보 사도가 이베리아반도 북서쪽에 묻혔다는 설은 전설에 근거한 것이다. 성령강림 이후에 사도들은 복음 선포하기 위해서 각자의 선교지로 떠났다.
성 야고보는 로마의 속주인 스페인에서 선교하려고 애썼지만, 성과없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다가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해서 참수형을 당했다. 몇 명의 신자들이 사도의 유해가 담긴 돌관을 해변까지 나르자, 천사가 양옆을 붙잡고 있는 배가 나타나 그 관을 실었다고 한다. 그 배는 지중해를 지나 대서양까지 나갔고, 로마 시대에 갈리시아지방의 수도였던 이리아프라비아에 닿았다고 한다.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발견되던 당시 갈리시아지방은 레콩키스타의 열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무슬림으로부터 국토 회복을 위한 크리비오 전투에서 사도 성 야고보가 백마 탄 전사 모습으로 나타나 칼을 휘둘러 무슬림 군사들을 겁먹게해서, 공격해 오던 이슬람교도 군사들의 의지를 꺽었다고 한다. 반대로 사기가 오른 그리스도교도 군사들은 “산티아고! 돌격! 스페인!”이라고 외치며 적극적으로 돌격해 결국은 승리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이야기 때문에 성 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시청으로 쓰고 있는 라호이 궁전 앞에는 성 야고보의 기마상이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