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중용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10-19 04:54 조회수 : 160
진정한 중용
어제 쓴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제법 있었다. 반응을 보이신 분들이 대부분 부모이기에 지각한 학생에게 시험을 못보게 한 것은 심하다는 의견도 생각보다 많았다. 문제의 학생은 학교에 오는내내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고 강의실을 앞두고는 그 불안감이 절정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시험을 보았더라도 시간에 쫓겨서 차분하게 시험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학생은 나름 열심히 준비했기에 더 억울했을 수도 있다. 물론 늦잠을 자서 시험을 못 본것은 자신의 책임이기에 불이익을 오롯이 감수해야 마땅하다.
유교 사상가들이 오랫동안 존중해 온 경전으로 《중용》이 있다. 중용은 ‘치우치지도 기울지도 말고,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 되어 있다. 쉽게 표현하면 ‘중도(中道)’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중도’라고 하면 언뜻 적당히 타협하며 어정쩡하게 넘어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매사에 있어서 과연 어떻게 해야 편향되지 않을까? 이렇게 하면 지나치지 않을까? 아니면 불충분하지 않을까?’등을 고민하며 상황에 따라 가장 적절한 해결책을 찾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중용이다.
이를 교수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인정 때문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아야 한다. 문제의 학생에게 너무 관대한 처분을 해서도, 너무 과중한 판단을 해서도 안 된다. 어제 언급한 법과 규칙의 현실에서도 중용은 고려되어야 한다. 만약 무단횡단으로 길을 건너면 경범죄에 해당되기에 범칙금을 내면 된다. 이유는 남에게 적극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을 속여서 경제적이나 정신적으로 피해를 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요즘 한창 시끄러운 주제는 주가를 조작한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이냐를 갖고 소모적 논쟁을 벌이고 있다. 주가를 조작해서 자신은 이익을 보고 남에게는 경제적인 손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누가 뭐라해도 범죄행위이다. 이런 부당한 행위는 반드시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것의 도덕적으로는 공정한 사회의 정의 실현이요, 법적인 면에서보면 누구에게나 공평한 중용에 해당되는 것이다.
오늘 주제인 지각해서 시험을 못보는 상황처럼 애매한 경우에는 똑 떨어지는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 그래서 당연한 것 같지만 '시험에 늦으면 입실이 불가하다'라는 사항을 미리 공지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겠지만 그렇게 했다면 분쟁의 소지는 훨씬 줄어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시험 한 번 망친다고, 점수가 조금 떨어진다고 ‘휴학해서 성적을 리셋해야 하나?’라고 고민할 정도로 성적우선주의가 적절한 것인지, 너무 과도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