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편리함과 부작용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4-23 02:33 조회수 : 62
생활의 편리함과 부작용
어린 손자를 키우는 할머니가 휴대폰으로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데 어린 손주가 할머니에게 자기도 아빠와 엄마 그리고 삼촌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고 자랑을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기뻐하면서 외워보라고 했다. 아이는 거침없이 핸드폰을 받아들고서는 엄마는 1번, 아빠는 2번, 삼촌은 3번이야 라고 하더란다. 아이는 단축번호를 이용하여 전화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눈여겨 보았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솔직히 말해 나도 온전히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많지 않다. 휴대폰을 사용하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그래서 그런지 마약 휴대폰을 잃어버리면 따로 메모를 해놓지 않는 이상 나의 인간관계가 순식간에 망가지고 만다. 예전에는 몇 십 개의 전화번호는 거뜬하게 외워서 어디에서든지 동전만 있으면 바로 전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휴대폰을 깜박 잊고 외출하면 불안감 때문에 머릿속에서 전화기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전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낭패를 볼 것이 분명하다.
어디 이런 일이 휴대폰 뿐일까? 우리가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이런 일은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세탁기를 사용하면서 손빨래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냉장고가 필수가 되면서 상온에서 음식물 저장법을 잊어버렸다. 자동밥솥으로 밥을 하다 보니 밥 지을 때 불조절하는 방법을 잊어버린지 오래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제품들을 사용한 세대들은 이런 기계들이 없으면 살아가는 방법조차도 모를거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처럼 문명의 발달은 우리에게 생활의 편리를 가져다주지만 그 부작용은 편리함에 반비례해서 커지므로 심각하다. 좀 과장해서 얘기한다면 사람들이 첨단 제품을 사용하면 할수록 생각하려하지 않고 때로는 게을러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편리함 때문에 자신의 몸과 머리는 점점 퇴화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관심조차 없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들이 똑같은 처지에 있으면 굳이 문제 삼으려하지 않는 게 우리들의 솔직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는 현대문명의 특징을 ‘돈을 들여 내 몸의 기능을 하나하나 잃어버리는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살기 위해서 주신 인간의 고유한 신체적 기능을 돈 내고 버리는 꼴 같아서 착잡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억울해 하기는 커녕 하루빨리 버리지 못해서 안달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퇴화된 기능이 필요하다 싶으면 그 기능을 위해서 돈 내고 배우느라 난리다. 참으로 바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이 모든 현상들이 우리는 문명의 발전과 단순한 부작용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편리함을 제공해주면서 대신 돈을 버는 집단들의 속임수라는 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