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그랭이질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4-12 05:11 조회수 : 78

그랭이질


몇 년 전에 지금은 퇴임한 대통령이 법흥사터 초석에 걸터 앉은 것을 갖고 시비가 일어난 적이 있었다. 산책을 하다가 기자들 하고 이야기를 하려고, 수행했던 문화재청장에게 물어보고 문제가 없다고 해서 잠시 앉았다. 이때 기자 중에 한 사람이 다음날 기사에 대통령이 문화재를 함부로 대한다고 기사를 썼다. 난 그 기사를 보고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무조건 누구를 두둔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초석이 사람보다 중요한 것인가?하는 물음을 해보게 된다. 가령 초석에 앉는다고해서 그 돌이 손상이 되면 문제가 되지만 그런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초석은  집이나 절을 세우기위한 기초가 되는 돌이다.  그것은 어김없이 민중의 발 아래서 밟히고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주춧돌이다. 옛날 한옥이나 사찰을 지을 때 주춧돌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했다. 기둥을 맨땅 위에 세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기둥은 반드시 주춧돌 위에 세워 나무로 된 기둥이 비나 습기에 상하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주춧돌은 그저 생긴 그대로의 펑퍼짐한 돌을 구해 사용했다. 얼핏 주춧돌은 바닥이 반반해야만 쓸모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 선조들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자연석을 다듬지않고 써도 기둥을 세우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닥이 고르지 않은 주춧돌 위에 기둥을 제대로 세우려면 돌을 반반하게 깎아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돌을 다루기보다는 나무가 다루기가 쉽다. 돌을 깎아내는 대신 돌의 생긴 모양을 따라 나무 기둥의 밑동을 파내면 되었다. 바로 그것이 그랭이질이다. 

생각해보면 간단하면서도 절묘한 이치가 아닐 수가 없다. 돌과 나무라는 성질이 아주 다른 두 재료를 접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 그랭이질이기 때문이다.


새삼 그랭이질이 생각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그랭이질에 달려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서로가 하나가 되기 위해 내가 나를 잘라내는 아픔을 감수해야한다. 내가 나를 깎아내지 않고 하나가 되자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한다.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돌보다는 민중을 섬기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기자가 괜스레 돌을 빙자해서 시비를 걸었던게 추해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