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조상이 순교자면 뭐하나?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5-28 22:30 조회수 : 80

조상이 순교자면 뭐하나?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날이다. 역사가 비교적 짧은 한국 천주교회로서는 뜻깊은 날이며 자랑스러운 기념일이기도 한다. 순교는 진정으로 하느님을 따르는 용기가 있는 이들만이 받을 수 있는 사랑의 꽃다발이요, 기도로써 마음을 적시며 사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의 월계관이다. 초기 한국교회에서는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지키려고 수없이 많은 분들이 순교를 택하셨다. 후손인 우리들은 그 뜻을 기리면서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을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순교자의 후손답게 살지 못한다면 순교자들의 숫자가 많다는 것이 결코 자랑거리가 되지 못할 것이다. 


지금 현재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가 얼마나 용기 있게 신앙을 전하고 있으며, 얼마나 기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지가 우리 신앙의 척도여야 하거늘, 성당의 규모와 교우 숫자는 얼마이며, 헌금 액수는 얼마인가 등 외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우리의 신앙을 판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규모와 숫자에 집착하다보면, 죽음을 각오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순교하신 신앙의 선조들을 욕되게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사실 우리에게 성당문을 들락거리는 신발 숫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살아 있는 신앙인의 모습이 더 소중하며, 헌금 바구니를 채우는 지폐의 양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느냐가 더 소중하다. 

오늘 복음에서도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순교의 신비는 바로 목숨을 구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라는 것을 의미한다.  


초기교회의 성인 중 크리소스토모란 분이 있는데 동로마 황제가 그에게 신앙을 포기하라고 명령했으나 그는 세상 모든 것은 포기할 수 있어도 예수님만은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저항했다. 결국 황제는 그를 체포하여 누구와도 대화하지 못하도록 독방에 가두라고 했다. 그러자 신하가 황제에게 “그리스도인들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사람은 혼자 감옥에 가두면 하루종일 신나서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니 독방에 가두는 것은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황제는 극악무도한 죄인들이 많은 곳에 가두라고 명령했는데, 이번에도 신하는 그러면 오히려 전교할 기회를 얻었다고 기뻐할 것이니 그 방법도 현명한 것은 아니라고 간언했다. 이번에는 황제가 당장 목을 쳐서 죽이라고 하지 그는 이번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순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처형에 나온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 가게 되었다고 하면서 울기는커녕 오히려 웃으면서 죽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신자들이 더 늘어난다고 부하들은 걱정을 했다. 


하느님을 진정으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란 세상의 모든 ,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포기할지언정 예수 그리스도만은 포기할 없는 자들이며,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 사람들이다. 복자 윤지충과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오늘 나도 사제로서 얼마나 용기를 갖고  하느님을 증거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