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오로의 시련과 은총
내일이면 우리 본당의 주보 성인이신 사도 바오로 축일이다. 나는 사도행전을 읽다가 사도 바오로에 매료가 되어서 그 분의 행적을 면밀하게 추적한 적이 있었다. 투르키예를 성지순례를 하면서도 남들은 잘 가지 않는 ‘다르소’와 ‘안티오키아’까지도 일부러 찾아서 순례를 했다. 사도 바오로를 좋아하는 이유가 초대교회가 설립되어 가는 과정에서 공로와 업적이 실로 대단해서다. 사도행전의 절반 이상이 사도 바오로의 행적에 관한 기록이고 그분이 쓰신 서간문을 읽다 보면 그의 신앙과 열정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바오로의 회심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의 회심 이후에 바로 그리스도의 열렬한 사도요 경이로운 서간문을 남긴 성인이 된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도 회심 이후에도 끊임없는 고통과 시련을 겪었고 오랜 기간을 정화의 시간으로 보냈다. 사도 바오로는 회심 이후에도 그 전에 행했던 일로 인해서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켰다. 초대교회 공동체 원로들은 그런 바오로의 존재가 불편했고 더 큰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를 고향 다르소로 보내서 한참을 머물게 했다.
고향 다르소에 머물면서 고독와 침묵을 통해서 철저히 자기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아마도 처음에는 자신의 넘치는 열정과 헌신을 매도해 버린 사람들, 자신을 문젯거리로 여겼던 교회 공동체 원로들과 형제라고 믿었던 그들에 대한 배신감에 울분을 토했을 것이고, 그 원망의 화살이 어쩌면 하느님께로 향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가 바오로에게는 고독과 번민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숙시키는 은총의 시간으로 작용을 했던 것이다.
참된 회심이란 모든 것을 자신보다는 주님의 시선을 통한 깨달음이다. 깨달음을 깊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정화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사도 바오로에게는 고향에서의 그 인내와 시련의 시간은 더 큰 소명을 위해서 꼭 필요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후의 사도의 모습은 좀 더 성숙해지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통과 실패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과 위로를 얻었고, 완전한 치유를 얻었던 것이다.
사도 바오로의 교훈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고독과 번민의 시기, 시련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때가 은총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긴 어둠 끝에 만나는 태양이 더 밝고 찬란하듯이 고생 끝에, 아픔 끝에서 만나는 희망이 더 크고 따뜻하다는 점을 사도 바오로를 통해서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