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과 에디슨
만약 아인슈타인과 에디슨이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아인슈타인은 학교에서 쫓겨났거나, 수학과 물리학만 잘하고 다른 과목을 잘못했으니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냥저냥 평범하게 지냈을 것이고, 에디슨은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왕따를 당하거나 여러 발명품을 만들어도 각종 규제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고 많은 것들이 폐기됐을 것이다. 내가 너무 자조 섞인 반응을 보인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것이 우리 교육과 사회적 현실이다.
우리는 인터넷의 발전 덕분에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를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정보화시대를 살고 있다. 정보가 차고 넘쳐서 정보 부족이란 말을 하기가 어색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차고 넘치는 정보 가운데 나에게 필요한 정보는 어떤 것이 있으며, 어떤 정보가 나에게 유익한 것인가를 식별할 줄 아는 능력은 가져야 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정보를 활용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능력으로 평가를 받는 사회가 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정보화 시대의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아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답을 빨리 알게 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질문과 대화를 통해서 원리와 과정을 알게해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창의성이 생기게 되는데, 창의성은 강요를 받는 순간에 위축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수록 발휘하기가 쉽지않다. 창의성은 ‘엉뚱한 면을 존중해주고 많은 시행착오를 격려하는 과정’이 필수적인 것이다.
유대인 사이에는 천재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남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아이라는 말이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아인슈타인과 에디슨이다. 그들은 또래 아이들과 다른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 첫 출발은 호기심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호기심은 때로는 집중력을 흩뜨리거나 주제를 벗어나게 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호기심을 허용하지 않고 막아버리면 창의성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 과정 안에서 ‘다름’과 ‘틀림’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생각과 다르면 틀렸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틀린 것이다.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우리들도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같은 인재를 가질 수 있다. 그들의 재능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의 존중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