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부자
벌써 7월의 첫날이다. 세월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보다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을 함부로 지내지는 않았는지를 생각해보니, 시간의 빠름보다는 충실히 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사람들이 안부를 묻거나 안사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건강하세요”이다. 인사말은 시대의 흐름과 관련이 있어서 시기마다 바뀐다. 내가 어렸을 때는 "밤새 안녕하셨습니까?"이었는데 단군이래 경제적으로 가장 어렵다고 했던 IMF시절에는 가장 대표적인 인사말이 “부자 되세요”이었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 안에는 삶의 우선 순위에서 재물이 차지하는 관심도와 무관하지 않다. 요즘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지켜보면 모든 행위들이 재물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전에도 재물에 대한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조심스러워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던 것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난 뒤에는 드러내놓고 모두가 물질에 대한 관심을 노골적으로 표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영향은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은 그 정도가 오히려 점점 심해지고 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열망 속에는 부가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부자란 과연 무엇일까? 동양의 전통적인 부의 가치관에서는 부자는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원했던 것이 사실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공수래 공수거’ 라는 말이 그동안 존중받아왔던 것이다. 그런 의미의 부자라면 모두가 꿈꿔도 좋을 일이겠지만, 단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많은 재물을 소유하는 의미라면 함부로 나눌 인사는 아니지 싶다.
한 부자가 죽은 후에 베드로 성인 앞에 섰다. 살아있을 때처럼 그는 위세가 당당했다. 그를 본 성인이 말했다. “불쌍한 인생아, 너는 살아있는 동안 부유하게 살았지만 네가 이룬 부는 다른 사람의 눈물이었다. 그러니 너는 ‘괴로움의 방’으로 가라.” 그러자 부자는 풀이 죽어서 방으로 갔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부자는 주눅이 들어서 성인 앞에 섰다. “위로를 받아라. 네가 이룬 부는 네 땀의 결과였다. 너는 부를 이루었을 때 너의 몫과 남에게 나누어 줄 몫을 진정으로 고민했다. ‘위로의 방’으로 들어가거라.”
부자에게 내린 판결을 본 한 빈자는 다행스러운 얼굴로 베드로성인 앞에 섰다. “너는 가난하게 살았다. 하지만 그 가난의 이유는 오직 하나, 너의 게으름 때문이었다. 너는 남들처럼 노력하지 않았다. ‘한숨의 방’으로 들어가라.”
이번에도 한 빈자가 성인 앞에 서서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보내 주세요.”
그러나 베드로 성인이 내린 판결은 직전의 가난한 사람과는 달랐다. “너는 스스로 가난하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려고 노력했고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대했다. 비록 네가 가난한 자였을지언정 하느님께서는 너를 가장 큰 부자라고 말씀하셨다. 큰 부자여, 네가 닦아준 눈물이 꽃들로 피어난 ‘기쁨의 방’으로 가거라. 거기가 네 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