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선물 때문에
내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자매님 중에 처녀 때와 결혼 초기에는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 등 열심했던 자매가 어렵게 임신하고 아이를 출산하더니 아이 때문에 신앙을 멀리하신 분이 계신다. 가끔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아이를 낳으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겠다고 했으나 그 이후로 성당에서 본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유는 아이가 어려서라고 핑계를 대더니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아이의 학교 때문에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하느님이 선물로 주신 자녀인데 그 선물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자매에게 자녀가 오히려 신앙의 방해물이 되었나보다!”하고 속으로 생각을 했었다. 물론 나의 생각이 전적으로 맞다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신앙의 방해물이라고 잠시나마 생각한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의 선물 때문에 찬미의 노래를 불러드리기는 커녕 오히려 선물 때문에 하느님을 망각하고 사는 모습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고마움을 실망감으로 되돌려드리는 것은 크게 잘못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느님이 주신 선물에 도취가 되어 선물을 주신 분의 정성도 뜻도 사랑도 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다시 되돌아오면 선물을 주신분께서는 섭섭한 마음을 거두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느님과 예수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복음에 보면 백성들이 예수님을 악착같이 따라다닌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마귀들도 쫓아내주시고 당시에 아무도 할 수 없는 일들을 거침없이 하셨기 때문이었다.
특히 오천 명이 넘는 이들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을 본 후 백성들은 더 열광적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이때 예수님께서 군중을 향하여 한 말씀하신다. “너희는 배불리 먹은 빵 때문에 나를 따라다니다. 그러나 그 빵이란 썩어 없어지는 빵이다. 눈에 보이는 빵, 썩어 없어질 빵을 얻으려 말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신비를 찾아 얻도록 힘써라.”는 말씀을 하신다. 이 말씀의 속내는 빵을 주신 이보다 양식으로의 빵에 더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들을 꾸짖는 말씀이다.
요즘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큰 선물 때문에 곤욕을 겪는 한 인간을 보고 있다. 최고의 통치자로 만족하지 못하고 권력의 달콤함을 오랫동안 갖고 싶어서 무리수를 두다가 갖고 있는 명예와 권력마저 내려놓을 위기에 처해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고 있다. 하느님이 내게 주신 선물을 보면서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도 선물로 받은 자녀 때문에 또 선물로 받은 권력과부, 건강에 도취가 된 나머지 하느님의 뜻을 잊게 되는 부끄러움에서 하루속히 벗어났으면 한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 우리를 망쳐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