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갈대 신앙
한적한 시골 마을에 술집이 생겼다. 조용하던 마을에 술꾼들이 모이면서 밤새도록 마시고 떠들어대는 바람에 인근 성당은 큰 피해를 보았다. 그러자 본당신부와 교우들은 하느님께 그 술집을 없애 달라고 열심히 기도했다. 이 소문이 술집 주인의 귀에 들어갔지만 주인은 코웃음만 쳤다. 그런데 어느 날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그 술집에 벼락이 떨어져 불이나서 모든 것이 타 버렸다. 술집 주인은 본당신부와 신자들이 기도했기 때문에 자신의 전 재산을 날리게 되었다면서 법원에 재판을 걸었다. 반면에 성당에서는 그럴 리가 없다고 해명을 했다. 재판 끝에 판사는 아주 흥미로운 결론을 내렸다. 술집 주인은 성당의 기도의 능력을 확실히 믿고 있었고, 반면에 소위 하느님을 믿는 신자들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신앙을 풍자한 것이지만 의미심장하다. 나도 신부로 살아가지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없을 때가 많다. 냉담하는 친구들을 만나면서도 그들에게 다시 신앙생활을 하라고 강하게 이야기를 못하고 있다. 이유는 나 자신의 믿음도 연약하고 용기도 없어서라는 생각이든다. 내 자신이 보잘 것 없는데 어떻게 타인에게 확신에 믿음을 심어 줄 수 있겠는가? 신학생 시절부터 수많은 날들을 기도하면서 살아왔지만 하느님에 대해서 얼마나 확신을 갖고 있는가? 이 순간에도 하느님께 대한 지식은 늘지언정,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나는 가끔씩 꼬부라진 허리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며 성당문을 들어서는 노인들을 바라보면서 나의 신앙생활을 반성하곤 한다. 노인들은 허리가 굽어졌지만 나는 믿음이 굽어져 있고, 그분들은 하느님께 의지하고 있지만 나는 로만칼라에 의존하면서 살고 있고, 그분들은 말없이 행동을 보일 뿐이지만 나는 행동없이 입만 나불대면서 살았다. 신앙에 대한 지식은 내가 노인들에 비하면 훨씬 많이 알고 있지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그분들보다 낫다고는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그분들은 하느님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지만 성모상이나 성인상을 바라보면서 당신들도 닮고 싶다는 마음을 간절히 청하면서 살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를 빛낸 위인들 중에는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와 브루노가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갈릴레이는 교회의 압력에 굴복해서 자신의 확신을 철회하였기에 목숨을 유지했지만, 브루노는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음으로써 화형을 당했다. 이처럼 신앙에 대한 지식은 언제든지 위기가 닥쳐오면 부인하고 번복할 수 있으나 믿음은 순교를 당할지언정 지켜내는 것이다. 수많은 성인성녀들이 품었던 믿음, 그 믿음이야말로 우리 신앙들이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다. 입술로만 기도하고, 신앙에 대한 지식이 많으면 무엇하겠는가? 바위와 같이 꿋꿋한 믿음이 없다면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신앙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