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책임감과 은퇴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7-19 05:45 조회수 : 79

책임감과 은퇴


본당신부로 살면서 가장 많이 생각나는 단어는 단연 ‘책임감’이다. 어제처럼 비가 많이오면 성당에 물이 새는 곳은 없는지, 신자들이 불편해하는 사항은 없는지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어제 새벽 2시에 비가 엄청나게 퍼부었을 때도 자다가 일어나서 성당을 한바퀴 돌아보고 들어와서 다시 잠이 들었다. 내가 대림동 성당 주임신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한 이러한 책임감은 숙명이며 지속될 것이다. 

책임감은 내 삶에서 뭔가를 결정할 때뿐만이 아니라 타인 혹은 세상과 관계를 맺을 때도 필요한 자세다. 사제로 살아가는 나는 성당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만, 나 또한 신앙공동체에 심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늘 책임감을 갖고 말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나의 경솔한 판단으로 인해서 다수의 신자들이 상처받거나 곤란해지는 경우가 없어야 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매사에 신중하지는 않았다. 나도 보좌신부일 때는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이나 말을 정의감이라고 포장하면서 거침없이 하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만 옳다는 생각과 행동이었기에 나로 인해서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 늦었지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람은 늙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노래가사처럼 나도 점점 성숙해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시간이 지남에도 여전히 자신이 주변에 미칠 영향력은  생각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진행하던 일들이 잘못되면 곧장 발을 빼고 다른 사람 탓을 하고, 잘되면 무조건 자신의 성과로 돌리는 부류의 사람이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동료들은 ‘이러다가 내 공마저 빼앗기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생겨서 미움이 쌓이는 공동체가 된다. 결과적으로는 그 집단은 서로간에 불신이 조장되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하는 전쟁터가 되고 마는 것이다. 


공동체를 운영하다보면 자기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슬그머니 봉사를 강요하고 성과만 바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많으면 물론 단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런 경우에 일시적으로 자신을 높일 수는 있지만, 반대 입장인 사람은 자신만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억울한 생각을 하게 된다. 교회 단체에서는 내가 봉사직을 그만두면 되지만 생계가 걸린 직장이라면 내 마음대로 멀어지기도 힘들다. 그렇게 되면 조직에 대한 애정을 점점 내려놓고 호시탐탐 이직할 기회만 노리게 될 것이다. 그런 분위기라면 어차피 떠날 곳이니 열심히 일할 의욕도 사라지게 된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이렇듯 책임감의 부재가 얼마나 공동체에 해로운 일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다음 순서는 내가 바로 그 ‘책임감 없는 사람’이 아닌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나 역시 본당신부로 살아가면서 자주 성찰한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책임감을 너무 버거워하지 않은지, 신자들을 배려하지 않고 나의 편안함을 챙기고 있지 않은지, 일을 남에게 떠맡기고 성과만 바라지 않은지를 말이다. 나는 늘 다짐을 하는 게 있는데, 책임감보다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편안함을 먼저 떠올리는 순간이 바로 내가 은퇴해야 할 시기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