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거룩함과 천박함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4-06 06:10 조회수 : 79
거룩함과 천박함


하늘과 땅의 경계는 어디일까? 이 둘이 뚜렷하게 구분되는가? 전혀 다른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둘은 결국 하나인 듯하다. 하나면서 둘이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다. 하늘과 땅의 경계를 따라가보면 땅인가 하면 하늘이고, 하늘인가 하면 땅이다. 

인간의 삶은, 바로 땅이면서 하늘이고 하늘이면서 땅인 경계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선을 따라 인간 삶의 온갖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성과 속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하늘은 거룩하고 땅은 천박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렇다면 거룩함과 천박함, 성스러움과 속됨의 경계는 어디일까? 이 둘 또한 명확히 구분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거룩함과 천박함 역시 양면성을 갖고 있어서 둘인 듯 하나이며 하나인 듯 둘이다. 인간 만사가 하늘과 땅의 경계면을 따라 이루어졌듯 성스러움과 속됨에 대한 인식도 그 경계면을 따라 이루어진다고 불 수 있다. 우리네 삶이란 이처럼 거룩함과 속됨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거룩함만을 추구하며 땅을 떠나려 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속됨에만 젖어 하늘로 올라갈 꿈조차 꾸지 않는다면 인간의 삶이 의미를 잃기 마련이다. 


식도락에 빠져 먹고 마시는 일을 즐기며, 자나 깨나 돈만을 밝히고, 텔레비전 드라마나 아이돌 가수의 노래에 열광하며 산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가볍게 느껴지겠는가? 그렇다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속세를 떠나 수도원이나 사찰로 들어가 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간단히 생각하고 처신할 일이 절대로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한심하기 짝이 없고 회의를 느끼는 현실의 한복판에서도 성스러움을 찾아내야 한다.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땅은 생명을 갖은 그 무엇도 생산해낼 수 없다. 하늘이 땅으로 내려와야 마침내 온전하고 참된 생명의 기운이 약동하게 된다. 거룩함은 속됨 안으로 깊숙이 내려와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거룩함과 속됨을 한 몸에 끌어안고 있는, 존재의 아름다움이 그 빛을 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우리 삶의 거룩함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공간과 작업이 있다. 그것이 바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한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인류사 안에서 최대의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늘과 땅의 조화를 통해서 거룩함을 함께 동참하는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우리 자신 또한 부활의 삶을 살기 위해서 속됨 안에서 거룩함에 의지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